흙먼지 일으켜 다시 도래했다면 승패 알 수 없었으리(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이기고 지는 일은 병가지상사라 예측할 수 없으니(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수치를 견디고 참는 것이 사내대장부로다.(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강동의 자제들 중 뛰어난 인재가 즐비하니(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흙먼지를 일으켜 다시 도래했다면 승패를 알 수 없었으리라(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위 시는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803~853)의 시 ‘題烏江亭(제오강정·오강정에서 쓰다)’으로, 그의 문집인 ‘번천문집(樊川文集)’에 있다. ‘역발산 기개세’의 무위를 떨친 서초패왕 항우(기원전 232~202)가 오강(烏江)에서 자결한 일에 대한 시인 두목의 심경이 담겼다. ‘권토중래’란 말이 이 시에서 나왔다.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는 ‘당서(唐書)’의 배도전(裵度傳)에 나온다. 당 황제가 싸움에 지고 온 배도에게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병가에서 늘 있는 일이다(一勝一敗 兵家常事)”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도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 하여,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 기죽지 마라”는 뜻으로 종종 쓴다.
오강 나루터에 ‘오강정’ 정자가 있다. 기원전 202년 겨울이었다. 유방의 대군에 포위된 해하성(垓下城)을 탈출한 항우가 남쪽으로 달려서 이른 곳이 오강이었다. 남은 병사들이 항우에게 “속히 강을 건너 강동으로 피신하십시오. 다시 군대를 길러 천하를 쟁취하십시오”라고 권했으나, 항우는 거절하고 쫓아온 유방의 군대와 싸워 장렬히 자결하고 만다. 두목은 시에서 항우가 분노와 수치심을 이기고 다시 군대를 길러 때를 기다렸다면 천하를 얻을 기회가 왔을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한다. 월왕 구천(句踐)이 오왕 부차(夫差)의 변을 맛보는 굴욕을 참아 마침내 월나라를 재건하고 오나라를 없애는 기회를 얻었듯이 말이다.
필자가 하동 화개면에서 운영하는 서사(서당)에 고서와 함께 옛날 장기알과 장기판을 팔러 온 분이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생 때 많이 두던 장기(將棋)와 같은 것이었다. 초패왕 항우는 파란 글씨로 ‘초(楚)’, 한 고조 유방은 빨간 글씨로 ‘한(漢)’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분은 어찌 필자가 초한전쟁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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