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웃으며 추위 비웃고 내 앞에 오네(一笑凌寒向我前·일소릉한향아전)
산속의 두 옥 같은 신선에게 묻노니(爲問山中兩玉仙·위문산중양옥선)/ 온갖 꽃 피는 봄을 어찌하여 기다렸나?(留春何到百花天·유춘하도백화천)/ 예천 객관에서 서로 만남과는 다른 것 같네,(相逢不似襄陽館·상봉불사양양관)/ 한 번 웃으며 추위 비웃고 내 앞에 오네.(一笑凌寒向我前·일소릉한향아전)
위 시는 퇴계 이황(1502~1571)의 ‘陶山訪梅(도산방매·도산의 매화를 만나다)’로 그의 문집인 ‘陶山雜詠(도산잡영)’에 있다. 도산잡영은 퇴계가 57~ 66세 약 10년간 쓴 시 가운데 도산서당에서 읊은 시만 손수 뽑은 시집이다.
퇴계는 66세에 공조판서 벼슬을 부여받고 그해 정월 서울로 가게 된다. 예천까지 갔다가 병이 나 사직 상소를 올리고, 풍산의 광흥사와 봉정사에 머물다가 늦은 봄에야 도산서당으로 돌아왔다. 몇 달 만에 왔는데, 매화 두 송이가 피어 자신을 반기지 않는가. 첫 구 ‘두 옥 같은 신선’은 옥같이 희고 밝은 꽃을 피우며 신선의 자태를 한 도산의 두 그루 매화이다. 셋째 구 ‘양양’은 경북 예천의 옛 지명이다.
퇴계는 서울로 가는 도중 머물던 예천 관아에 매화가 핀 모습을 보았다. 그 매화에 퇴계가 묻는 시와 매화가 답하는 시를 읊었다. 예천 매화에서는 사랑스러움을 못 느꼈지만, 도산 매화는 퇴계를 보자 방긋 웃었다. 그래서 셋째 구에서 예천에서 본 매화와 다르다고 했다. 도산 매화는 오로지 퇴계를 보려고 모진 추위도 견디고, 그를 보자 반가워 웃으며 쓰윽 다가오는 듯했다. 예천 관아에서처럼 퇴계는 위 시를 읊은 뒤 매화가 그에게 답하는 시 ‘매화답(梅花答)’을 지었다. 퇴계는 도산잡영 외에 그가 쓴 100수 넘는 매화 시 중 선별해 ‘매화시첩(梅花詩帖)’도 묶었다. 퇴계는 특히 매화에 관한 시를 많이 썼고, 매화를 각별히 사랑했다. 매화의 고고한 풍모를 경외한 때문 외에 단양군수 때 만난 관기 두향(杜香)의 사연도 있다. 그 러브스토리는 애절하여 다음에 한 번 소개하려 한다. 어제 필자가 차산에 올라가니 차밭에 있는 매화나무에 하얀 매화 두 송이가 수줍게 피고 있었다. 화계 십리 벚꽃 피기 전 매화가 만발하지만, 안타깝게도 벚꽃만큼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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