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겨울밤이라 지겹게도 길구나(咄! 冬之夜甚乎長·돌! 동지야심호장)
경금자가 어느 날 밤에 등잔 기름이 다 닳는 바람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을 다 자고 깨어났다. 시중드는 하인 아이를 불러 물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느냐?” “아직 자정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잠을 청했다. 잠이 또 들었다가 깨어나 아이한테 다시 물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느냐?” “아직 닭이 울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잠을 청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뒤척대다가 일어나서 아이한테 또 물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느냐? 방안이 훤하구나.” “창문에 달빛이 비쳐 훤합니다.” 경금자가 말했다. “허허! 겨울밤이라 지겹게도 길구나.” …
絅錦子燈盡而睡, 睡盡而覺, 呼僮問曰: “夜如何?” 僮曰: “未午.” 復睡, 睡而又覺, 又問曰: “夜如何?”僮曰: “未鷄.” 復强睡, 睡不成轉輾, 覺, 又問曰: “夜如何? 室百矣.” 僮曰: “月案戶矣.” 絅錦子曰: “咄! 冬之夜甚乎長.” … (경금자등진이수, 수진이각, 호동문왈: “야여하?” 동왈: “미오.” 복수, 수이우각, 우문왈: “야여하?” 동왈: “미계.” 복강수, 수불성전전, 각, 우문왈: “야여하? 실백의.” 동왈: ‘월안호의.“ 경금자왈: "돌! 동지야심호장." … … )
이옥(李鈺·1760~1815)의 산문 ‘夜七(야칠·밤의 일곱 가지 모습)’로, 서유구의 시문집 ‘김화지비집(金華知非集)’ 권7에 있다. 이옥은 조선 정조가 내세운 문체반정의 주요한 표적이었던 탓에 관계 진출이 막혔지만, 특유한 문체를 고수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하인 아이가 “나리에게나 밤이 길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밤이 짧다”며, 긴긴밤도 짧게 여기며 사는 세상 사람 사연을 일곱 가지로 들려준다. 객지에서 친한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 경우, 밤새 노름하는 노름꾼, 오랜 이별 뒤 만난 연인, 생계에 바쁜 장사꾼과 수공업자, 조정 벼슬아치, 곧 과거시험을 치를 수험생, 밤새워 도를 닦는 도사이다.
인생 처지와 그 목적지는 달라도 밤을 낮 삼아 불을 밝히는 인간 군상의 삶이 생생하다. 삶이 팍팍한 요즘 그런 사람이 더욱 많으리라. 지리산 골짝에 살다 보니 겨울밤이 길다. 마을 어르신들은 초저녁에 주무신다. 새벽에 깨어 날 밝을 때까지 담배 한 갑을 다 피우는 분도 계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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