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만 한 층 남았구나(惟存塔一層·유존탑일층)
산안개로 아침밥을 짓고(山霞朝作飯·산하조작반)/ 여라(女蘿) 넝쿨에 보이는 달로 등불 삼네.(蘿月夜爲燈·나월야위등)/ 외로운 암자 아래 홀로 자니(獨宿孤庵下·독숙외암하)/ 오로지 탑 한 층이 남았구나.(惟存塔一層·유존탑일층)
위 시는 태종(이방원)의 맏아들 양녕대군 이제(李禔·1394~1462)의 시 ‘題僧軸(제승축·스님의 두루마기에 쓰다)’로, 조선 중기 문신 김시양(金時讓·1581~1643)의 문집 ‘자해필담(紫海筆談)’에 실려 있다. 양녕대군은 1404년 10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엄격한 궁중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폐위됐다. 그 뒤 궁을 나와 떠돌았다. 태종의 셋째아들 충녕대군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세종이다.
양녕대군은 그렇게 유랑하다 어느 산속 작은 암자에 묵었다. ‘僧軸’은 스님의 시 두루마기로 방명록 같은 것이다. 가난한 암자여서 아침 공양도 없었는지 안개로 밥 짓는 상상을 한다. 스님은 여라 넝쿨 사이로 보이는 달빛을 등불로 삼아 산다. 탑도 다 무너지고 마지막 한 층만 남았다. 양녕은 그 탑이 마치 자기 모습인 양 느낀다. 세자로 부귀·권세를 다 누려보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만사 저 무너진 탑처럼 다 부질없다는 심경이 마지막 시구에 담겼다. 오늘 종일 매화가 거의 만개한 차산에서 일하는 동안 조선 초기 정치적 사건들이 떠오르면서 태종과 양녕대군의 형제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밤에 시에 뛰어났다는 양녕대군 자료를 읽다 위 시에 눈길이 갔다.
목압서사는 목압사(木鴨寺) 절터다. 무너져 뒹굴던 목압사 탑은 인근 쌍계사 금당(金堂)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목압사 주춧돌로 추정되는 돌만 몇 개 흩어져 있다. 밤이 되면 자그만 암자에 앉아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서인지 위 시의 암자 모습이 절로 상상된다. 미친 척하며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준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 이보(李補·1396~1486)의 시 ‘文殊臺(문수대)’도 이 시와 맥락이 통한다는 느낌이다. “신선 왕자진이(仙人王子晉·선인왕자진)/ 어느 해에 여기서 노닐었나?(於此何年游·어차하년유)/ 학은 이미 떠나고 대는 비어(臺空鶴已去·대공학이거)/ 조각달은 지금까지 천 년일세.(片月今千秋·편월금천추)”
'조해훈의 고전 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54> 봄날 발걸음이 더뎌진다는 고려 때 시인 진화의 시 (0) | 2022.06.01 |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53> 토끼 간을 얻으려는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 (0) | 2022.06.01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51> 윤휴가 이동규에게 시국을 우려하며 보낸 편지 (0) | 2022.06.01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50> 문사들이 당쟁에 희생되는 현실을 풍자한 황정견의 시 (0) | 2022.06.01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49> 거란대장경을 보수하고 법회 연 고려 승려 충지 (0) | 202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