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50> 문사들이 당쟁에 희생되는 현실을 풍자한 황정견의 시

bindol 2022. 6. 1. 06:06

누가 더불어 시름겨운 눈썹으로 노래 부르며 한잔할 것인가

 

- 誰與愁眉唱一杯·수여수미창일배


소유는 술 취해 늙은 등나무 아래에 누워 있으니(少游醉臥古藤下·소유취와고등하)/ 누가 더불어 시름겨운 눈썹으로 노래 부르며 한잔할 것인가?(誰與愁眉唱一杯·수여수미창일배)/ 강남의 풍물을 풀어헤쳐 애끓는 시구를 지을 사람은(解作江南斷腸句·해작강남단장구)/ 지금은 오직 하방회가 있을 뿐이네.(只今唯有賀方回·지금유유하방회)

중국 송 때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1045~1105)의 시 ‘하방회에게 부치다(寄賀方回·기하방회)’로 그의 문집인 ‘예장 황선생문집(豫章黃先生文集)’에 있다.

하방회는 당나라 시인 하지장의 후손으로, 북송 때 시인 하주(賀鑄·1052~1125)의 자(字)이다. 문집 ‘동산사(東山詞)’를 남긴 그는 강직하고 오만한 성격 때문에 줄곧 요직에 등용되지 못해 뛰어난 재주와 기략을 실현할 기회를 못 얻었다고 한다. 소유는 고문과 시에 능했고 특히 사(詞)에 뛰어났으며, 시문집 ‘회해집(淮海集)’(40권) 등을 남긴 진관의 자(字)이다.

1095년 왕안석의 신법당(新法黨)이 부활하자 구법당인 황정견은 신법을 비난했다는 죄목으로 검주(黔州·사천성 팽수현)에 유배됐다. 1100년 사면 복직되었으나, 1102년 다시 무고를 당하고 의주(宜州)에 유배돼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시인으로서 명성이 높았고, 스승인 동파 소식과 나란히 송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황정견은 조보지(晁補之·1053~1110)·진관(秦觀·1049~1100)·장뢰(張耒·1054~1114)와 함께 소식 문하인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로 불렸다. 젊어서 소식은 그의 작품을 보고 당대에 필적할 사람이 없다고 극찬했다. 황정견은 사주(泗州) 통판으로 있을 때부터 하주와 우의가 두터웠다.

위 시는 황정견이 악주(鄂州·현 무창)에 머물 때 읊었다. 강호를 떠도는 서글픈 시절에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는 우정을 노래한다. 하지만 북송 시대 격렬한 당쟁 와중에 재능 있는 문사들이 폄적(貶謫)당하고 심지어 유배지에서 목숨을 잃는 현실을 풍자한다는 평을 받는다. 밤에 지리산 깊은 산중인 화개골 목압서사에 앉아 있으면 ‘여기가 적소(謫所)로구나’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황정견의 시편을 읽다 위 시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