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스톰 몰려오는데
한가한 정책 논쟁 할 땐가
김동원은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다. 통상 전문가도 아니며 중국도 잘 모른다. 그런 그가 미·중 무역 전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4개월쯤 전이다. 학생들에게 ‘시사경제’를 강의하면서 한국 제조업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됐다. 보면 볼수록 겁이 덜컥 났다. 명재경각(命在頃刻), 숨이 곧 끊어질 지경이라 대수술을 해도 살까 말까인데 미증유의 쓰나미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그게 미·중 무역 전쟁이었다.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쓰나미의 실체를 알아야 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인민망, 국제무역원, 국내외 기관과 언론 보도를 샅샅이 뒤졌다. 통계와 자료, 숫자를 찾고 분석했다. 그리고 크게 세 가지 결론을 얻었다. 그는 이 결론을 18일 중앙그룹 중국연구회 강연에서 소개했다. 마침 트럼프가 중국산 수입품 2000억 달러어치에 추가 관세를 발표하면서 전쟁의 수위가 크게 높아진 날이었다.
첫째, 이 전쟁은 오래간다. 왜 그런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요, 세계 경제 패권을 겨루는 건곤일척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지금이 아니면 늦다며 끝장을 보려 한다. 수단도 많다. 강한 경제도 강점이다. 기술 유출 차단, 보복 관세는 물론이요, 통화전쟁도 불사할 기세다. 그렇다고 중국이 백기 투항 할 리 없다. 당장 600억 달러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놨다. 하지만 힘으로는 밀린다. 길게 보고 버티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비관세 장벽, 전략 물자 수출 제한 같은 수단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의 임기와 관계없이 미·중 무역 전쟁은 앞으로 뉴노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둘째, 세계 경제 게임의 룰이 바뀔 것이다. 트럼프는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을 재편하려 한다. 세계의 부를 중국이 미국보다 더 많이 가져가는 꼴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계속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 바람에 미국인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공업 도시가 망가졌다고 믿는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계속 중국에 투자하다간 미국에 물건을 팔 수 없다.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하라. “중국에서 탈출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가장 많이 돈과 기술을 쏟아부은 한국 경제엔 존재론적 위기다.
셋째, 문제는 한국이다. 2차 차이나 쇼크가 1~2년 내 닥칠 것이다. 2012년 1차 때와는 달리 이번엔 길고 무섭고 극복 불가능할 수 있다. 나라 경제가 존폐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얘기를 말로 하지 않았다. 자료와 통계와 숫자로 보여줬다. 그는 백면서생을 자처하지만, 결코 장삼이사는 아니다. 교수로 출발해 신문사 논설위원을 4년 했고, 은행 부행장을 3년 했으며,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도 2년 했다. 다양한 인생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혔다. 그가 4개월 씨름해 내놓은 결과물은 놀랍게도 내로라하는 통상 전문가인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의 진단과 일맥상통했다. 최 교수 역시 “이번 전쟁이 오래갈 것이며, 세계 경제의 새판짜기가 이뤄질 것이고, 이는 한국 경제를 강타하는 퍼펙트 스톰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책을 묻자 김 교수는 “없다”고 했다. 우선 국가 산업전략을 다시 짜고 수출·대기업·제조업이 신나게 뛰게 해줘야 하는데, 그래도 될까 말까인데, 내수·중소기업·서비스업 같이 안에서만 매달려서는 답이 안 나온다고 잘랐다. 규모 10의 지진이 오는데 화장실 하수구 고치는 꼴이라고 했다. 그는 “결국 갈 데까지 간 뒤에야 후회할 것”이라며 “그때는 이미 늦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정치는 혁명이 돼도, 경제는 혁명이 안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 왜 이걸 모르나.”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