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타임’(Elon Time)이라는 표현이 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의 시간 관념을 풍자한 표현이다. 그가 말한 계획은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니 새겨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론 타임은 17일(현지시각)에도 다시 드러났다. 인류 최초의 달 관광객이 될 사람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그는 이날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일본인 억만장자 마에자와 유사쿠(前澤友作)가 2023년에 달 관광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1년 전 발표에서 “2018년 안으로 우주 관광객 2명을 실어 달로 보낼 것”이라고 장담하던 그였다.
아마도 미국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의 화법에 이미 익숙한 모양이다. 지난 4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콘퍼런스에 나온 그윈 숏웰 스페이스X 사장이 “뉴욕~상하이를 40분 안에 주파하는 로켓 여객기를 10년 내에 내놓겠다”고 얘기하자 크리스 앤더슨 TED 대표가 “그게 일론 타임으로 말한 것이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최근 머스크가 다시 구설에 뜨겁게 오르내리고 있다. 전기차의 대명사 테슬라는 소비자들에게 약속한 납기를 맞추지 못한 것은 물론, 상장된 지 8년이 넘도록 영업이익을 내지 못한 채 장밋빛 아이디어만 계속 내놓고 있어 투자자들의 비난이 커지고 있다. 생방송 팟캐스트에 나온 머스크가 흐린 눈빛으로 마리화나를 피우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머스크에 대한 미국 사회의 신뢰는 여전해 보인다. 17일 달 관광객 발표에서도 “왜 일정을 연기하게 됐느냐”고 따져 물은 사람은 없었다. 대신 “2023년엔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정도였다. IT 전문잡지 와이어드도 ‘머스크의 1년은 일반인의 8년에 해당한다’며 ‘마치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개의 생애주기와 유사하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도 ‘머스크는 많은 일을 해냈다. 그의 제정신이 아닌 듯한 계획은 기존 기업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21세기 전기차와 태양광 발전 시대를 이끌었고, 미 항공우주국(NASA)도 해내지 못한 재활용 로켓 시대를 열었다.
일론 머스크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두 번의 기행과 계획 연기만으로도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리지 않았을까.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한국처럼 첩첩산중 규제에다 정치가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사회에서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혁신가가 태어날 수도 성장할 수 없다”고 한탄한 한 기업인의 얘기가 떠오른다.
최준호 과학&미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