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랜드마크 강박
그러나 관광객 끄는 힘은
초대형 건축 명소 아니라
삶과 역사가 녹은 공간들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관광도시를 만들어 주시오. 이렇게 주문한 사람은 어느 도시 시장이었다. 표현이 달라도 비슷한 시장, 군수들이 있었다. 한낱 건축가를 붙잡고 이렇게 요구하는 건 유명해진 성공사례 때문이었다. 쇠락하던 탄광도시가 관광도시로 바뀌었다더라. 미술관 하나로 전세역전의 잭팟이 터졌다더라.
시장, 군수, 의원들이 스페인의 도시 빌바오에 줄지어 연수를 다녀왔다. 소문의 유명한 도시들이 동반 목적지였겠다. 신문에서 관광성 외유라 의심하는 그것이다. 혈세 절약 위해 집약적 체류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절 버스로 돌며 서둘러 사진 찍고 돌아왔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다. 그들은 관광객이었고 본 것은 먼발치의 멋진 구조물들이었다. 파리에 에펠탑이, 뉴욕에 여신상이, 시드니에 오페라하우스가 있더라. 사진 찍으니 멋있고 그걸 보러 나 같은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더라. 그런데 우리에게는 없구나. 우리도 랜드마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한강 변에 이상한 인공섬 만들고, 용도도 모르는 채 디자인플라자 만들었으며, 한강 복판 외딴 섬에 오페라하우스 만들려고 했다. 그들이 파악한 도시의 정체성은 세트장이나 도박장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젊어서 외국 체험 기회가 없던 세대가 나이 먹고 사회 주역이 되었다. 방문한 도시의 속살을 관찰하거나 가치를 음미할 여유 없이 바쁜 고위직에 덜컥 올라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질주하는 관광버스 유리창 너머로 보고 느낀 대로 건축가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랜드마크 만들어 주시오. 상징조형물 건립합시다. 관광객이 밀려오도록.
서울에도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곳이 있다. 너무 밀려들어 주민들이 분노의 팻말을 써 붙이기에 이른 곳이 북촌이다. 한옥이야 남산, 민속촌에도 있다. 그러나 북촌에 관광객이 밀려드는 건 이곳이 세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삶의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질문은 지자체장들을 향한다. 당신은 누구에 의해 왜 선출되었습니까. 유권자는 관광객 아닌 시민이다. 선거는 관광 주무 부서장 선임 과정이 아니고 시민의 권력 이양 절차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공평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선거로 권력을 위임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를 허용할 테니 시민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한다면 그 지자체장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거나 오해하거나 잊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운명의 별자리로 정해진 장애인은 없다. 우리는 모두 늙으면 결국 장애인이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 가면 즉시 장애인이 된다. 한국말 못하는 방문객도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배려하는 도시가 당연히 국제화된 도시다. 랜드마크 없어도 관광도시다. 가장 중요한 문화공간은 미술관과 음악당이 아니고 거리와 지하철이다. 값싸게 모집해서, 특혜 시비 많은 재벌 면세점 매출 올려주고, 자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 먹고, 이 땅에 쓰레기 던지고 가는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관광도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앙정부에서 지역밀착형 생활 SOC를 만들겠다고 한다. 사용된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방향은 확실히 옳다. 정치뿐 아니라 도시도 생물과 같다. 여기저기 잘라 개발할 대상이 아니다. 혈도를 짚어 최소한의 침을 놓아 그 생명력이 도시에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 최선의 도시개발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놀이터와 도서관이 가득 필요하다. 그 벤치에서 이국의 관광객이 안전하고 불편 없이 쉴 수 있으면 그게 관광도시다.
결국 이 사업은 지자체의 몫이다. 인구감소와 노령화로 지방도시의 시름이 크다. 나이 많은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고 관광객도 함께 즐기는 구조물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군수도 있었다. 나는 기꺼이 화장실, 안내소, 작은 전망대를 설계했다. 그러나 쇠락하는 도심에 518m 높이 전망대를 세워 관광명소로 만들어야겠다는 도시가 여전히 존재하는 게 우리 시대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물어야 한다. 당신은 누가 선출했는지. 그 도시는 세트장인지 삶의 터전인지.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