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문화탐색] 관광도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bindol 2018. 9. 20. 05:22

지자체의 랜드마크 강박
그러나 관광객 끄는 힘은
초대형 건축 명소 아니라
삶과 역사가 녹은 공간들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관광도시를 만들어 주시오. 이렇게 주문한 사람은 어느 도시 시장이었다. 표현이 달라도 비슷한 시장, 군수들이 있었다. 한낱 건축가를 붙잡고 이렇게 요구하는 건 유명해진 성공사례 때문이었다. 쇠락하던 탄광도시가 관광도시로 바뀌었다더라. 미술관 하나로 전세역전의 잭팟이 터졌다더라.

 
시장, 군수, 의원들이 스페인의 도시 빌바오에 줄지어 연수를 다녀왔다. 소문의 유명한 도시들이 동반 목적지였겠다. 신문에서 관광성 외유라 의심하는 그것이다. 혈세 절약 위해 집약적 체류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절 버스로 돌며 서둘러 사진 찍고 돌아왔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다. 그들은 관광객이었고 본 것은 먼발치의 멋진 구조물들이었다. 파리에 에펠탑이, 뉴욕에 여신상이, 시드니에 오페라하우스가 있더라. 사진 찍으니 멋있고 그걸 보러 나 같은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더라. 그런데 우리에게는 없구나. 우리도 랜드마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한강 변에 이상한 인공섬 만들고, 용도도 모르는 채 디자인플라자 만들었으며, 한강 복판 외딴 섬에 오페라하우스 만들려고 했다. 그들이 파악한 도시의 정체성은 세트장이나 도박장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젊어서 외국 체험 기회가 없던 세대가 나이 먹고 사회 주역이 되었다. 방문한 도시의 속살을 관찰하거나 가치를 음미할 여유 없이 바쁜 고위직에 덜컥 올라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질주하는 관광버스 유리창 너머로 보고 느낀 대로 건축가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랜드마크 만들어 주시오. 상징조형물 건립합시다. 관광객이 밀려오도록.
 
랜드마크를 통한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국내 지자체마다 ‘빌바오 효과 ’ 를 노린 건축 붐이 한창이다. 그러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단순한 관광자원 확보가 아니라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조성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중앙포토]

랜드마크를 통한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국내 지자체마다 ‘빌바오 효과 ’ 를 노린 건축 붐이 한창이다. 그러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단순한 관광자원 확보가 아니라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조성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중앙포토]

옆집 트로피를 구경했으면 땀 흘려 운동하자 다짐해야지 우리도 트로피 만들어 진열하자면 곤란하다. 옆집의 땀은 이렇다. 빌바오는 미술관 건립 훨씬 전에 계획재단으로 ‘빌바오 메트로폴리 30’, 실행조직으로 ‘빌바오리아 2000’이라는 개발공사를 만들었다. 임무는 관광자원 확보가 아니고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 조성이었다. 이들은 개발사업으로 번 돈을 재투자해 철도 걷어내서 공원 만들고, 흉악한 구조물 철거해서 우아한 가로등으로 도시 어두운 곳을 밝혔다. 석탄 실은 열차가 아니고 걸어 다니는 시민들을 위한 도시의 틀이 충분히 갖추어졌을 때 시장이 던진 승부수가 미술관이었다. 귀띔하거니와 한국에서 책정되는 건축 예산으로는 그런 역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싸게 넣고 크게 먹자면 그게 도박장이다.
 
서울에도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곳이 있다. 너무 밀려들어 주민들이 분노의 팻말을 써 붙이기에 이른 곳이 북촌이다. 한옥이야 남산, 민속촌에도 있다. 그러나 북촌에 관광객이 밀려드는 건 이곳이 세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삶의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질문은 지자체장들을 향한다. 당신은 누구에 의해 왜 선출되었습니까. 유권자는 관광객 아닌 시민이다. 선거는 관광 주무 부서장 선임 과정이 아니고 시민의 권력 이양 절차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공평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선거로 권력을 위임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를 허용할 테니 시민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한다면 그 지자체장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거나 오해하거나 잊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어진 한강 인공섬 세빛둥둥섬의 전망공간. 야간 조명이 유명하다. [뉴시스]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어진 한강 인공섬 세빛둥둥섬의 전망공간. 야간 조명이 유명하다. [뉴시스]

공무원들이 연수 다녀온 도시는 거의 선진국에 있을 것이다. 그 도시는 세트장 운영으로 번 돈을 투전판에 재투자해 이룬 결과물이 아니다. 그 공통점은 랜드마크의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 노약자, 외국인 등의 소수에 대한 차별이 없거나, 없도록 치열하게 노력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마땅히 그것이 시장·군수가 꿈꾸는 도시여야 한다. 그때 그 도시는 외국인들이 기어이 방문하겠다는 관광도시가 된다. 그들은 잃어줄 돈지갑 쥔 관광객이 아니고 문화적 호기심이 가득한 손님이다.
 
세상에 운명의 별자리로 정해진 장애인은 없다. 우리는 모두 늙으면 결국 장애인이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 가면 즉시 장애인이 된다. 한국말 못하는 방문객도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배려하는 도시가 당연히 국제화된 도시다. 랜드마크 없어도 관광도시다. 가장 중요한 문화공간은 미술관과 음악당이 아니고 거리와 지하철이다. 값싸게 모집해서, 특혜 시비 많은 재벌 면세점 매출 올려주고, 자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 먹고, 이 땅에 쓰레기 던지고 가는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관광도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앙정부에서 지역밀착형 생활 SOC를 만들겠다고 한다. 사용된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방향은 확실히 옳다. 정치뿐 아니라 도시도 생물과 같다. 여기저기 잘라 개발할 대상이 아니다. 혈도를 짚어 최소한의 침을 놓아 그 생명력이 도시에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 최선의 도시개발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놀이터와 도서관이 가득 필요하다. 그 벤치에서 이국의 관광객이 안전하고 불편 없이 쉴 수 있으면 그게 관광도시다.
 
결국 이 사업은 지자체의 몫이다. 인구감소와 노령화로 지방도시의 시름이 크다. 나이 많은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고 관광객도 함께 즐기는 구조물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군수도 있었다. 나는 기꺼이 화장실, 안내소, 작은 전망대를 설계했다. 그러나 쇠락하는 도심에 518m 높이 전망대를 세워 관광명소로 만들어야겠다는 도시가 여전히 존재하는 게 우리 시대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물어야 한다. 당신은 누가 선출했는지. 그 도시는 세트장인지 삶의 터전인지.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출처: 중앙일보] [문화탐색] 관광도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