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55> 죽음으로 임무를 완수하고자 한 신하 이야기
죽어서라도 임금의 명령을 성취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저의 복이라고 하겠습니다. 과군(寡君)은 신의를 지키는 신하를 두게 되었으며, 신은 죽음으로 명령을 다하게 되었으니, 또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死而成命, 臣之祿也. 寡君有信臣, 下臣獲考死. 又何求?(사이성명, 신지록야. 과군유신신, 하신획고사. 우하구?)
‘左傳(좌전)’ 宣公(선공) 15년 조의 한 구절이다. 위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당시의 상황을 조금 알아야 한다. 춘추시대인 기원전 595년, 초(楚)나라가 송(宋)나라를 공격하자 송나라는 진(晉)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진왕은 해양(海揚)을 파견하여 진나라의 병사들이 곧 구원하러 오니 초나라에 송이 투항하지 말도록 했다. 그러나 해양은 뜻밖에도 포로로 잡혀 초나라에 보내졌다. 초장왕은 그를 후하게 대접하여 송나라를 설득하여 항복하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해양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송나라에 진왕의 말을 전했다. 초왕이 이를 알고 해양을 죽이려 하자 해양이 말한 내용이 위의 문장이다. 이에 초왕은 군주에 대한 해양의 충성심을 높이 사 그를 풀어주고 병사를 철수시켰다.
그 뒤로도 초나라와 송나라의 전투는 계속되었다. 송나라 대신 화원(華元)이 초나라 장군 자반(子反)을 만나 제의했다. “초군이 30리만 물러가 준다면 그 어떤 조건이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초군은 그 말대로 30리 밖으로 물러났다. 화원은 초나라에 인질로 잡혔고, 초나라와 송나라 양국은 동맹을 맺게 되었다. 적군 병력이 성(城)까지 다다라서 물러날 곳이 없게 될 때 굴욕적으로 성 아래에서 약속한다는 말인 ‘성하지맹(城下之盟)’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나왔다. ‘寡君’은 다른 나라의 임금이나 고관에게 겸손의 뜻으로 자기 나라의 왕을 이르던 말이며, ‘下臣’이란 당시에 남자가 자신을 낮추어 이르던 말이다. ‘考死’는 ‘尙書(상서)’ 洪範(홍범) 편의 ‘考終命(고종명)’과 같이 죽음으로써 이룬다는 의미이다.
요즘 시대에 자신의 군주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신하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조선 시대에 세조를 거부하고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死六臣)이 그런 신하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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