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카페에선 지갑을 테이블에 두고 자리를 비워도 돼. 신기해서 화장실 갈 때 몇 번 해봤어. 정말 (훔쳐 가지 않고) 그대로 있더라.”
“술에 취한 채 지하철을 탈 수도 있지.”
한국에 체류하는 20대 파리지앵과 뉴요커가 유튜브에서 나눈 대화다. 둘은 서로의 서울살이를 이야기하며 한국의 안전함을 찬양했다. 수년 전부터 유행한 이런 부류의 영상은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을 가감 없이 보여줘 인기를 끌었다. 때론 뜨끔할 때도 있지만, 한국인이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늦은 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술에 취해 지하철에 탄 젊은 외국인은 마치 제 안방인 양 신나게 떠들어 댄다. 승객 상당수의 머릿속엔 ‘내가 뉴욕이나 파리에서 저럴 수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스쳐 갔을 것이다. 그가 유독 배짱 좋은 외국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밤과 지하철이 세계적으로 안전하다는 건 웬만한 배낭여행족은 다 안다. 나 역시 짜증스러운 외국인 소음에도 ‘그래, 우리의 밤이 너희 낮보다도 안전하니까’라며 참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자부심이 있었건만 최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통일여론’ 2분기 분석 보고서(지난 6월 발간)를 보고 흠칫 놀랐다. 통일여론은 헌법기관인 민주평통이 정부의 대북·통일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취지로 각계의 의견을 모아 1년에 네 번 발간하는 보고서다. 그중 ‘우리 안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여론조사 설문에 ‘안정적’이라는 응답이 43.8%에 불과했다. 지난 2분기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평화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한 기간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절반에 못 미치는 이 수치가 2015년 같은 조사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는 점이다. ‘안정’이라는 답변이 ‘불안정’ 응답(21.4%)을 앞지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올 1분기는 ‘안정(32.8%)’보다 ‘불안정(33.8%)’ 답변이 더 많았다. 그렇게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은 우리의 안보를 오래도록 ‘불안정’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외국인도 맘껏 밤 문화를 즐기는 이 안전한 나라에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 번째 만남이 3분기 통일여론을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주길 희망한다. 이후 정치권도 국민의 심리 변화에 더 높은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 최근의 통일여론이 국민의 안정감이 높아지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결과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높아진 안정감이 정부 여당의 논리대로 ‘평화가 경제’라는 결과물로 돌아오길 바란다. 이전 정부가 주창했던 ‘통일 대박’(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논리이니 지금의 야당도 싫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출처: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