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33주기 애도의 물결... “젊은이를 어찌 다 죽일 수 있으랴”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34회>
톈안먼 기억을 탄압하는 중국공산당...영국 대사 “민간인 사망자 최소 1만명”
33년 전 오늘 중국 정부는 20만 병력을 투입해서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자유와 민주를 외치며 평화적으로 시위하던 군중을 학살했다. 실제 희생자의 수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1989년 6월 30일 베이징 시장 천시통(陳希同, 1930-2013)은 학생 38명을 포함한 241명이 사망하고 3000여 명의 민간인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사망자가 천 명을 훌쩍 넘어 수천 명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2017년 10월 공개된 주중 영국대사 도널드(Alan Donald)의 비밀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민간인 사망자의 총수는 최소한 1만 명에 달한다.
톈안먼 민주화 운동 33주년을 앞두고 최근 베이징시 인민 정부 산하 톈안먼 지구 관리위원회는 5월 25일에서 6월 15일까지 텐안먼 광장의 당일 방문 예약을 모두 중단시켰다. 광장에 군중이 운집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톈안먼 어머니회” 등 톈안먼 희생자 유가족은 특히 삼엄한 감시를 당하고 있다. 해외로 망명한 톈안먼 민주인사는 중국 내 가족들과 자유롭게 전화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2021년 7월 후베이(湖北) 지방법원은 인권운동가 인쉬안(尹旭安, 1974- )에게 4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그가 트위터에 올린 톈안먼 추모식의 사진을 결정적 증거로 채택했는데, 죄명은 “싸움을 걸고 문제를 일으켰다”는 의미의 심흔자사죄(尋釁滋事罪)였다. 오늘날 심흔자사죄는 인권운동가와 민주인사를 체포하고 처벌할 때 적용되는 이현련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법이다.
2021년 10월 광둥(廣東) 지방법원은 인권운동가 장우저우(張五洲, 1969- , 여)에게 톈안먼 일인 추모식을 거행하고 홍콩 국가안전법에 반대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2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장우저우에게도 공무집행방해죄와 심흔자사죄가 적용됐다.
2021년 12월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지방법원은 인권운동에 전념해온 블로거 천윈페이(陳雲飛, 1967- )에게 심흔자사죄로 4년 형을 선고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천윈페이는 2015년 톈안먼 희생자 추도회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이미 체포된 전력이 있었다. 당시 고작 스무 명이 참석한 추모식의 현장에 100명의 경찰이 들이닥쳐서 그를 “국가권력 전복 선동죄”와 심흔자사죄로 체포했다. 결국 2019년에야 만기 출소한 천윈페이는 불과 2년 만에 다시 갇힌 몸이 되었다.
역시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황치(黃琦, 1963- )는 톈안먼 실종자를 찾기 위한 톈왕(天網) 인권센터를 세운 인권운동가이다. 그는 1999년 중국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인터넷 사이트 “64톈왕(天網)”을 창시했고, 2000년 황치는 “국가 기밀 불법 보유죄”로 체포되었다. 2006년 출옥한 그는 곧바로 다시 “톈왕”을 재건했지만, 그해 8월 18일 불의의 사이버공격으로 사이트가 폭파되어버렸다. 2019년 황기는 “고의성 국가 기밀 누설죄”와 “불법성 국가 기밀의 해외 누설죄”로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 밖에도 중국 당국은 해외에서 체류하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가들을 여전히 감시하고 압박하고 있다. 베이징 대학 법대생으로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슝옌(熊焱, 1964- )은 19개월간 죄명도 없이 악명 높은 친청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출옥 후 그는 기독교도가 되어 199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미군에 입대하여 군목으로 복무했던 슝옌은 최근 뉴욕시 하원 선거구에 민주당 대표로 출마했는데, 최근 그는 다섯 명의 중국 정부 요원들이 그를 스토킹하며 회유와 협박을 가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홍콩에서 추모식 없앤 중국 공산당...톈안먼 희생자 추모제 2020년 이래 금지
1989년 이래 자유의 허브 홍콩에서는 톈안먼 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민주와 인권의 활동이 끊이지 않았다. 홍콩의 교회에선 해마다 64 희생자 추도예배가 거행되었고,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대규모 시민들이 참여하는 추모식이 거행되어왔다.
2020년 6월 3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국가안전법이 통과되었다. 2021년 3월 30일에는 베이징의 입맛에 맞게 홍콩 선거제가 개편되었다. 최근 홍콩 정부는 베이징의 눈치를 보면서 노골적으로 톈안먼 관련 활동 전반에 대대적인 압박과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열리던 빅토리아 공원의 톈안먼 희생자 추모제는 2020년 이래 금지되었다. 2021년 홍콩 경찰은 톈안먼 희생자 추모 집회를 개최한 26명의 민주화 인사들을 구속했다.
2014년 “우산 혁명”의 젊은 영웅 조슈아 웡(Jushua Wong, 黃之鋒, 1996- ), 반중 기업인이자 빈과일보(蘋果日報)의 발행인 지미 라이(Jimmy Lai, 黎智英, 1947- ), 2019-2020년 홍콩 시위를 심층 보도한 언론인 과이니스 호(Gwyneth Ho, 何桂藍, 1990- ) 등 26명의 민주 인사들이 4개월에서 1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죄명은 대부분 선동죄였다. 2020년 톈안먼 대학살 추모식에 타인들을 참석하라고 권유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1월, 홍콩 법원은 인권변호사 초우항퉁(Chow Hang-tung, 鄒幸彤, 1985- )에게도 2020년과 2021년 톈안먼 추모회에 참석해서 선동했다는 죄명으로 22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초우 변호사는 “애국민주 운동을 지지하는 홍콩 시민 운동연합회”(이하, 홍콩 연합회)의 부의장이다. 2021년 6월 홍콩 경찰은 홍콩 연합회가 운영해 온 “6.4 기념관”의 폐쇄를 명령했다. 홍콩 연합회가 이에 불응하자 홍콩 경찰은 3개월 후 기념관을 습격해서 강제로 폐쇄하는 강공책을 펼쳤다.
홍콩대학에 있던 톈안먼 대학살 희생자 기리는 상징 ‘치욕의 기둥’ 2021년 철거
2021년 12월 23일 홍콩 대학에서 “치욕의 기둥(Pillar of Shame)”이 사라졌다. 청동, 구리, 콘크리트로 제작된 “치욕의 기둥”은 8미터 높이로 2톤쯤 나가는 대형 조형물이다. 1997년 홍콩 반환을 몇 주 앞두고 덴마크 조각가 갈쉬오트(Jens Galschiot, 1954- )가 완성한 이 작품은 1997년 6월 3일 톈안먼 8주기 추모식에 맞춰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이후 “치욕의 기둥”은 1998년 12월 홍콩 대학으로 옮겨져서 23년간 그 자리에 줄곧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울퉁불퉁 땅 위로 솟아오른 원통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꿈틀꿈틀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형상이다. 누가 봐도 톈안먼 대학살의 희생자를 기리는 자유와 인권의 상징이다. 이 작품의 밑동에는 “6.4 도살(屠殺)”라는 큰 글씨 옆에 “늙은이가 어찌 젊은이를 다 죽일 수 있으랴(老人豈能夠殺光年輕人)!”란 글귀가 초서(草書)체로 새겨져 있다.
최근 수년간 중공중앙은 홍콩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극단적 조치로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급기야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생명으로 하는 대학이 어떤 압력에 시달렸는지 “치욕의 기둥”을 철거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갈쉬오트는 작품을 덴마크로 옮겨오려 했지만, 어느 운송업체도 정부의 “보복이 두렵다며” 나서지 않았다. 학생들은 항의하며 경찰의 감시를 피해 “번개” 집회를 열기도 했지만, 톈안먼 대학살의 기억을 지우려는 홍콩 정부의 시도는 더욱 거세지기만 했다.
“치욕의 기둥”은 중국어로 흔히 “국상지주(國殤之株)”라 번역된다. 중국어에서 국상(國殤)은 흔히 순국열사를 가리키지만, 여기서 “상(殤)”자는 본래 일찍 죽는다는 뜻이다. 국상이라는 단어는 “국가 때문에 요절했다”는 항의의 의미와 함께 “나라를 위해서 일찍 순절(殉節)했다”는 안타까운 칭송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국가 폭력으로 꽃다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제 홍콩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조형물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자유의 허브 홍콩에서 톈안먼 대학살을 규탄하고 희생자를 추모할 수 없다면, 이제 중국의 영토 내에서 6.4의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없게 된다. 어둠의 기억을 삭제하려는 중국공산당의 만행이 중국의 인민을 망각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
대만에서 계속되는 톈안먼 추모제...“‘치욕의 기둥’ 재건할 것” 선포
홍콩에서 톈안먼 희생자를 추모할 수 없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1989년 톈안먼의 민주투사들은 올해부터 대만에서 톈안먼 추모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 21일 국제 중국 민주화 운동단체 “화인 민주 서원”의 대표들은 대만에 모여 홍콩 대학에서 철거된 치욕의 기둥을 재건할 것을 선포했다. 그들은 또한 원작자 갈쉬오트를 초빙해서 제막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학생대표였던 왕단(王丹, 1969- )도 이 운동에 동참할 의사를 밝혔다.
30년에 걸쳐 톈안먼 대학살에 관한 3부작의 역사서를 저술한 재미 망명가 우런화(吳仁華, 1956- )는 이날 현장에서 “인권엔 국경이 없다”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출생지와 상관없이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1980년 한국 광주의 희생자들과 1947년 대만의 2.28사건 희생자들의 고통을 추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톈안먼 대학살이 중국에서 일어난 중국만의 사건이 아니라 인류가 희생당한 범인류적 사건이라는 자각이다. 우리는 모두 한 국가의 국민이기 이전에 인류의 구성원이라는 깨달음이다. 때마침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금지돼버린 홍콩의 추모 집회를 대신하기 위해 올해부터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런던, 파리, 서울, 타이베이, 울란바타르, 시드니, 오슬로, 암스텔담 등 세계 각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글로벌 추모대회를 거행한다. 중국공산당은 중국인의 뇌리에서 어둠의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절대로 인류의 공동 기억을 파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우런화는 1990년 미국으로 망명한 후 30년에 걸쳐 톈안먼 대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세 권의 방대한 역사서를 펼쳐낸 집념의 역사학자이다. 그는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을 바쳐 톈안먼 대학살의 실상을 낱낱이 기록해야만 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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