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인도 찾은 中 왕이 ‘쿼드’ 흔들기 “28억이 한목소리 내면…”

bindol 2022. 6. 25. 05:52

인도 찾은 中 왕이 ‘쿼드’ 흔들기 “28억이 한목소리 내면…”

중앙일보

입력 2022.03.28 18:02

 

25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중국·인도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왼쪽) 중국 외교부장이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오른쪽) 인도 외교부장과 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27일 6박7일간의 남아시아 4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중국 외교부가 28일 밝혔다. 중국 상하이의 신민만보(新民晩報)는 28일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인도→네팔로 이어진 왕이 부장의 남아시아 순방을 당(唐)나라 현장법사가 불경을 찾기 위해 인도를 찾았던 서유기(西遊記)에 비유했다.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망 흔들기 성격이었단 점에서 기원전 4세기 진(秦)나라의 굴기(崛起)에 대항해 소진(蘇秦)이 만든 합종책을 뚫었던 장의(張儀)의 연횡술에 비교하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관심을 모은 방문지가 인도다. 왕이 부장의 인도 방문은 지난 2020년 6월 국경 분쟁 중인 갈완 계곡에서 양국 군이 유혈 충돌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첫 최고위급 방문이다.

25일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과 회담에서 왕 부장은 “중국과 인도는 이웃한 양대 고대 문명국가로 28억 인구를 가진 최대의 개발도상국이자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의 대표 국가”라고 강조했다.

아지트 도발 인도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담에서는 “중국은 이른바 ‘단극 아시아’를 추구하지 않고 남아시아 지역에서 인도의 전통적 역할을 존중한다”며 “중국과 인도가 하나의 목소리로 말을 하면, 전 세계가 모두 경청할 것”이라며 협력을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왕 부장의 '구애'에 가까운 발언에도 인도 측 반응은 냉랭했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왕 부장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양자 관계 정상화를 요구한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 정상이 아니고 정상일 수 없다’다”라며 “협정을 위반하고 대량의 군대가 그곳(국경)에 주둔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관계 개선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단지 양국 사이의 신속한 군대 철수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신경전은 지난 22일 왕 부장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70년 분쟁지역이자 인도의 ‘역린’인 카슈미르를 언급할 때 예고됐다.

왕이(왼쪽)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48차 이슬람협력기구(OIC)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왕 부장은 22일 “카슈미르 문제에서 우리(중국)는 많은 이슬람 친구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중국도 여기에 같은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57개 회원국을 보유한 이슬람협력기구(OIC) 외교장관회담에서다. 왕 부장의 OIC 참석은 중국 외교부장으로는 처음이었다.

왕 부장의 카슈미르 발언은 계산된 발언으로 풀이됐다. 왕더화(王德華)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센터 남아시아연구소 소장은 “카슈미르 주민은 무슬림이다. 왕이가 이슬람의 지혜를 이용하라고 제안한 이유”라며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과거 세 차례 대규모 유혈 충돌을 야기한 문제다. 지혜만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인도는 왕이 부장의 발언에 반발했다. 23일 인도 외교부는 카슈미르 문제는 전적으로 인도의 내정이라며 “중국을 포함한 타국은 발언할 권리가 없다. 타국 내정에 인도가 판단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신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중국·인도 양국은 각자의 접근법을 공유했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회담 후 “양측은 즉각적인 휴전과 외교로 복귀의 중요성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인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지 않고 유엔 총회에서 기권을 행사했다. 중국과 맞서는 데 필요한 주요 무기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대화(쿼드)’와 균열을 보여왔다.

요게시 굽타 전 덴마크 주재 인도 대사는 이번 중·인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 “중국은 인도가 미국과 거리를 두고 러시아와 중국과 일종의 그룹에 합류해 ‘쿼드’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며 “이는 중국이 히말라야 국경에 남아있는 갈등 지역에서 손을 털고 철수하는 데 달려있다”고 SCMP에 지적했다.

왕이(왼쪽) 중국 외교부장이 27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프라찬다(오른쪽) 네팔 마오쩌둥주의 공산당 대표와 회담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네팔 마오이즘 공산당 대표 만나 미국 견제

인도에서 쿼드 흔들기 탐색을 마친 왕 부장은 26일 마지막 기착지인 네팔을 방문했다. 네팔은 지난달 27일 미국의 해외 원조기구인 ‘밀레니엄 챌린지 코퍼레이션(MCC)’로부터 인프라 프로젝트에 5억 달러(약 6094억원)를 지원받으면서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에 균열을 냈다.

왕 부장의 네팔 방문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도이체벨레(DW) 중문판은 왕 부장과 나라얀 카드가 네팔 외교장관이 체결한 아홉 개 조항의 협정에 ‘일대일로’라는 표현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네팔 총리와 왕이 외교부장 회담 후 네팔 총리실은 중국이 대출을 제공하는 대신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기를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왕이 부장은 27일 네팔 공산당의 양대 분파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연합의 카드가 프라사드올리 대표, 마오이즘센터의 프라찬다 대표와 각각 회견을 가졌다. 왕 부장은 2019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네팔 방문 당시 집권 총리였던 올리 대표를 만나 “당신은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라며 “중국은 자기 국정에 부합하는 발전의 길을 탐색하고 독립 자주의 내외 정책을 견지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독립 자주의 대내외 정책”은 중국이 제3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길 원할 때 쓰는 외교적 표현이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