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9월 평양 정상회담은 극장 국가 북한의 솜씨를 증명했다. 하지만 말의 성찬(盛饌)도 한반도 상황의 엄중함을 가리지 못한다. 핵 리스트나 핵 폐기 일정 같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는 이번에도 빠졌다. '평화, 새로운 미래'를 외친 평양 공동선언은 역설적으로 한반도 평화가 얼마나 험난한지 입증한다. 북한이 핵을 내려놓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 다시금 증명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소폭탄의 3종 전략 핵무기를 갖춘 국가가 핵을 포기한 적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진수(眞髓)다.
평양 회담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등의 진전을 이루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육성으로 "핵무기와 핵 위협 없는 한반도"를 확약한 것도 의미가 있다. 평양 공동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명문화한 대목이다. 판문점 회담이 합의한 '남북 정상의 정기 회담'을 실천하는 뜻도 있지만 그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김정은이 서울에 오려면 조건이 맞아야 한다.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북핵 문제가 타결되어야 김정은이 방한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 방한이 남·북·미가 함께하는 종전선언과 연동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평양 공동선언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심을 이끌게 조율되었다. 북한이 ICBM 능력을 부분적으로 선제 포기한 게 단적인 증거다. 트럼프는 즉각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정치적 운명을 가를 11월 중간선거가 코앞인 데다 리더십 균열로 지지율이 급락한 그에겐 돌파구가 절실하다. 도덕적 논란과 충동적 성품 때문에 위기를 자초했음에도 트럼프를 과소평가하는 건 짧은 생각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한 미국 대통령직을 쟁취한 희대의 이단아이자 수십년 만의 경제 호황을 미국에 선사한 인물이 트럼프다. 그는 구체적 결과로써 '불가능의 예술'을 입증한 정치인인 것이다.
김정은을 얕보는 것도 위험하다. 김정일 사망 이후 그는 '애송이 금수저'라는 선입견을 넘어섰다. 널리 퍼진 북한 붕괴론을 김정은이 오히려 붕괴시켰다. 잔혹한 공포정치에 유인책을 섞어 시장을 늘리고 전략 핵 국가의 줄타기 외교로 미국과 중국을 끌어당겼다. 결국 김정은도 나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독재자다. 체제 경쟁 당사자인 우리로선 안타까워도 이념적·도덕적 호오(好惡)를 넘어 김정은의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치를 지향하되 진흙탕 현실에서 운신하는 게 정치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한국 민주정치가 낳은 아들이다. 촛불로 표출된 민주주의의 역동성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전쟁으로 비화할 뻔했던 미·북 극한 대치 국면을 문 대통령이 정치력으로 타개해 불가능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현대사 자체가 불가능을 가능케 한 기적의 역사였다. 오늘날은 재현될 수 없는 박정희 정치의 힘이 국민의 열정과 결합해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우리의 역사는 불가능의 예술인 정치의 위력을 증명하는 현장이다.
지금은 문재인·김정은·트럼프의 정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역사의 시간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를 이룰 최후의 기회다. 남·북·미 리더십이 함께 전력 질주해 평화의 순간을 붙들어야만 한다. 트럼프의 정치 리더십은 도덕적으로는 용렬할지언정 제1차 미·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역량을 과시했다. 김정은은 끔찍한 독재자일망정 북한의 정상 국가화에 대한 비전을 선보였다. 문 대통령은 미·북의 접점을 발굴한 중재자이자 평화 협상가였다. 불가능의 예술인 세 지도자의 정치가 한반도 구조 변환의 스펙터클(장관·壯觀)을 앞당기고 있다.
평양 방문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김정은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지닌 야당과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생각이 다른 국민을 껴안는 통합의 행보에 인색했다. 천문학적 혈세가 투하될 남
북 경협도 국민적 동의가 우선이다. 부동산 광풍과 실업 대란이 대한민국을 황폐화하는 상황에서 민심의 신뢰와 지지는 신기루일 뿐이다. 내치(內治) 없이는 남북문제도 풀 수 없다. 결국 현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입증하는 책임 윤리다. 북핵 위기와 경제 위기에 맞서 불가능을 돌파하는 힘은 유능한 정치에서 온다. 불가능의 예술이야말로 정치의 정수(精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