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구중심처(九重深處)
천지일보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국가를 형성한 후, 신속하게 입법, 사법, 행정으로 권력을 나눈 정치체제를 구축했지만, 여전히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신권(神權)정치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은 처음부터 독제적 전제왕권을 확립했고, 시종일관 전제군주 외의 권력이 형성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삼권분립이라는 정치적 견제제도를 갖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전제군주는 산천(山川)의 신을 임명하기도 했다. 군주는 전제왕권이라는 통치제도 아래 각급 기관을 두고 다양한 정무를 분담시켰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통치자는 측근에게 황실 바깥을 다스리게 하는 이내어외(以內馭外), 작은 조직으로 큰 집단을 다스리게 하는 이소어대(以小馭大), 안과 밖을 긴밀한 조직으로 묶는 내외상유(內外相維), 국면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어 서로를 견제시키는 견아교착(犬牙交錯) 등의 비상조치를 강구해, 사다리 위에 누각을 올리는 방식으로 하부조직을 통제했다. 그 결과 관리(管理)하는 관리(官吏)는 많았지만, 일하는 관리는 적은 방대한 행정망을 형성했다. 이러한 정치 시스템에서는 인치(人治)가 중요하게 작용했고, 은밀한 정치적 권모술수가 분쟁해결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권모술수는 공개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했다. 병가(兵家)에서는 속임수를 노골적으로 전략적 지혜로 삼았다. 권모술수는 수많은 정치투쟁 과정을 거쳐 중요한 수단으로 응용됐다. 속임수가 지혜로 변한 배경에는 중국인의 전통적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이 있다. 그들은 천지와 사람의 일은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천지의 허무하고 가물가물한 모습을 인격화했다. 한대(漢代)의 백과사전인 백호통의(白虎通義)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하늘에는 진(鎭)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높은 곳에서 사람을 지배한다. 남녀를 합하여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천지를 합하여 부르는 말이 천원지방이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형태와 작용이 다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면서도 각이 졌다. 하늘은 왼쪽으로 돌고, 땅은 오른쪽으로 돈다. 군신(君臣)의 관계도 이와 같다.”
천지를 군신관계에 비유하는 군주는 백성의 하늘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하늘의 아들인 천자이다. 하늘은 높고 두터워서 수직으로는 중천(中天), 선천(羨天), 중천(衆天), 갱천(更天), 수천(燧天), 곽천(廓天), 함천(咸天), 침천(沈天), 성천(成天)이라고 하는 9겹이 있다. 그것을 구천(九天)이라 한다. 그 각각은 다시 수평적으로 9개 분야로 나눈다. 중앙은 균천(鈞天), 동쪽은 창천(蒼天), 동북쪽은 변천(變天), 북쪽은 현천(玄天), 서북쪽은 유천(幽天), 서쪽은 호천(皓天), 서남쪽은 주천(朱天), 남쪽은 염천(炎天), 동남쪽은 양천(陽天)이다. 9겹의 하늘은 군주가 거처하는 곳이므로 천자의 궁을 구중심처라고 한다. 9가지의 수평적 영역은 인사(人事)를 말한다. 천자는 중앙에서 거처하고 나머지 여덟 방향을 백성들이 둘러싼다. 그것을 정전법(井田法)이라고 한다. 술수가 천지에 이르고, 마음대로 조화를 부린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영웅은 마음대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천하의 주인이었다. 천자의 구중심처는 외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신비와 위엄의 상징이었다. 진(秦)의 조고(趙高)는 이세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자의 거처는 존귀하므로 무슨 소리든 들을 수는 있지만, 신하들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곳은 아닙니다. 폐하께서 반드시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무슨 말을 하시면, 대신들은 당장 그것을 이용할 생각을 합니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천자에게 도(道)가 있으면 주인으로 밀어 올리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쓸모가 없다고 버린다. 실로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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