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승부불측(勝負不測)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578년, 북주(北周)의 무제 우문옹(宇文邕)이 죽고 태자 우문윤(宇文贇)이 즉위했다. 자질이 부족했던 그는 중신들을 죽이고, 동궁의 관료였던 정역(鄭譯)에게 국정을 위임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황제 노릇마저 귀찮아서 이듬해 태자 우문천(宇文闡)에게 전위하고, 천원제(天元帝)로 물러나 환락에 빠졌다. 그에게는 5명의 황후가 있었다. 양견(楊堅)은 제1황후의 아버지였다. 양견은 후한말 명신 양진(楊震)의 13대손을 자칭했다. 5대조 양원수(楊元壽)는 북위 초에 무천현(武川縣)의 사마(司馬)를 역임했다. 양씨 일족은 줄곧 거기에서 살았다.
양견의 부친 양충(楊忠)이 북주의 수국공(隋國公)에 봉해지면서 권력의 중심에 들어갔다. 양충은 ‘보륙여(普六茹)’라는 선비족의 성을 받았다. 무제 시대에 양견이 수국공을 세습하고 그의 딸이 태자비로 간택됐다. 양견은 국구(國舅)로 조정대권을 장악했다. 양견은 인심을 얻는 능력이 탁월했다. 천원황제는 여러 차례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양견은 교묘하게 천원제의 칼날을 피했다. 화가 난 천원제는 양황후에게 너의 친정을 박살내겠다고 욕을 퍼부었다. 그대로 당할 양견이 아니었다. 천원제가 양견을 궁으로 불러서 온갖 독설을 퍼부었다.
양견은 물 흐르듯 유연한 말솜씨로 독수를 피했다. 580년 5월, 천원제가 죽었다. 근신 유방(劉昉), 정역, 이덕림(李德林)은 양견과 가까웠다. 신임황제 우문천은 8살로 정치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유방과 정역은 조칙을 조작해 양견에게 국정을 위임했다. 집권한 양견은 제위를 찬탈할 준비에 착수했다. 그의 측근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반대파는 차츰 밀려났다. 그래도 우문씨를 지지하는 세력은 만만치 않았다. 종실도 만만치 않았다. 양견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호체제를 갖췄다. 이어서 종실들을 수도로 불러 구금했다. 나머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양견의 고민거리는 군사적 실력자였다. 과연 상주총관(相州總官) 울지형(尉遲逈)이 종실의 구금을 이유로 양견 토벌군을 일으켰다. 각지의 군사 실력자들이 거기에 호응했다. 양견은 겨우 관중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반란세력이 힘을 결집해 일관된 작전을 펼쳤더라면 양견이 쉽게 상황을 수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세했던 반란군은 양견이 보낸 위효관(韋孝寬)과 왕의(王誼)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군사적 대치가 시작되자 반양견파와 종실은 외부와 연계했다. 양견은 안팎에서 위기를 맞이했다. 조왕 우문초(宇文招)는 양견을 부중으로 초청해 암살하려고 했다. 대장군 양홍과 원주는 양견의 심복으로 뛰어난 무사였다. 우문초가 참외를 깎겠다는 핑계로 패도로 양견을 찌르려고 했다. 눈치를 차린 원주가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으니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재촉했다. 우문초는 원주에게 부엌에서 물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원주는 꼼짝도 하지 않고 양견의 곁을 지키다가 아무래도 이상하니 빨리 돌아가자고 속삭였다. 양견은 웃으며 저들에게는 군사가 없으니 무슨 짓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원주가 말했다.“아닙니다. 선수가 중요합니다. 복병이 있으면 만사가 끝입니다.” 양견이 나가자 놀란 우문초가 칼을 들고 따라갔다. 그러나 원주가 문에서 가로막고 있었다. 방안에 갇힌 우문초는 화가 나서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며칠 후 양견은 우문초를 반역죄로 살해했다. 원주가 없었으면 양견은 우문초에게 피살됐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몇 차례 더 반복됐지만, 양견은 매번 위기에서 벗어났다. 사람의 노력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사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양견이 우문초에게 죽었다고 북주가 망하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역사에는 다른 왕조가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양견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과감했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반란이 평정되자 그는 남은 정적들을 제거하고 마침내 수왕조를 세웠다. 북주의 정권을 장악하고 황제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개월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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