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1> 근원과 환원 ; 복잡한 인간

bindol 2022. 7. 5. 04:26

근원적 요소들의 환원으로 설명 불가한 눈

 

원소와 원자에서 원은 같은 한자를 쓸까? 다른 한자를 쓸까? 다른 한자를 쓴다. 원소(元素)는 으뜸이나 처음을 뜻하는 원(元)을 쓴다. 원자(原子)는 근본이나 근원을 뜻하는 원을 쓴다. 서로 다른 한자를 쓰지만 그 뜻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으뜸이나 처음인 元은 근본이나 근원인 原과 그 맥락이 같다. 음악에서도 으뜸음과 근음은 대개 비슷한 맥락으로 쓰인다. 두 복원(復元, 復原)도 거의 같은 뜻이다. 원소와 원자의 원처럼 근원과 환원의 원도 다른 한자를 쓴다. 근원은 물 수가 부수인 원(源)을 쓴다. 사물이 생겨나는 본바탕이라는 뜻에서 물 수가 없는 원(原)을 써서 근원(根原)이라 해도 되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근원(根源)이라 쓴다. 어떤 물줄기가 있으면 그 근원이 되는, 즉 물이 흘러 나오는 수원(水源)이 바로 원이다. 지명인 경기도 수원(水原)은 원 앞에 물 수(水)가 있으니 굳이 수원(水源)이라 쓰지 않아도 물이 흘러 나오는 곳이다. 그런데 환원의 원은 으뜸 원을 쓴다. 으뜸이 되는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환원(還元)이다.

환원주의에 앞서 근원주의와 비슷할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지금 상태와 무관하게 처음의 뿌리적 근원(根源, 根原)이나 근본(根本)을 굳게 지키는 이념적 주장이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그렇다. 반면에 환원주의(reductionism)란? 지금 상태를 있게 하기까지 어떤 단순한 하위 수준의 부품적 요소로 돌아가 설명하려는 과학적 입장이다. 기계론적 환원주의가 그렇다. 환원주의로 물리나 화학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도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가령 뇌와 연결된 복잡한 체계로 작동하는 눈이 그렇다. 환원주의로는 눈이라는 정교한 작용이 어찌 생겨났는지 설명하기 힘들다. 즉 1+1=2라는 단순부품 조합의 환원주의 논리로는 복잡다단한 눈의 작용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눈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이에 환원주의에서 벗어나는 점에서는 같지만 상반된 다른 입장이 있다. 조물주의 고차원 지적 설계로 만들어졌다는 창조주의(creationism) 입장이다. 수만 개 부품들이 저절로 조립되어 비행기가 만들어질 수 없듯이 눈도 하위 요소들의 자연스런 조합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드시 인간을 초월한 전지전능한 신의 설계 및 제작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대립된 창발주의(emergentism)란? 눈을 이루는 하위 요소들 조합으로 눈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1+1>2라는 조건에서 눈이 이루어진다는 입장이다. 하위 요소들이 장구한 세월 동안 어우러지다 보면 그 요소들의 조합을 뛰어넘는 새로운 뭔가가 돌연히 변이하여 생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고등한 두뇌 작용도 마찬가지다. 신이 계신다면 직접적 창조가 아니라 간접적 창발에 관여하실 거란다. 과연 인간은 창조주의든 창발주의든 환원(還元)할 수 없는 근원(根源)의 진리를 알게 될까? 저마다 알 수는 있겠으나 강경한 입장이 드세게 대립하면 진리는 묻혀진다. 환원하여 밝힐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둘 다 믿음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일까? 과학은 사실 여부에 따라 바뀌지만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은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바뀌기 힘들다. 인간세상 참으로 복잡하다. 도대체 인간 자체가 도저히 환원이 안 된다. 도무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