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69> 창조와 창발 ; 창발적 창조론

bindol 2022. 6. 21. 05:21

질서있게 만든 창조 혼돈 속에 생긴 창발

둘 사이에 서로 말이 잘 안 통하는 집단은? 첫째, 정치 이념이 다른 좌파↔우파. 둘째, 국어 해석이 다른 한자 혼용론자↔한글 전용론자. 셋째, 종교 신념이 다른 창조론자↔진화론자 아닐까? 이 중 세 번째가 가장 말이 안 통할 것 같다. 창조론자에게 진화를 주장하면, 진화론자에게 창조를 주장하면 싸우기 쉽다.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과 교회에서 듣는 창조론에 대해 서로 신중해야 할 이유다. 그래서 창조와 진화보다 관점을 슬쩍 비켜 창조와 창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창조(創造·Creation)의 사전적 정의는 전에 없던 것을 비로소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하느님께서 천지는 물론 온갖 생명체들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성경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다. 첫째 날에 낮과 밤을 창조하셨다. 둘째 날에 하늘을 창조하셨다. 셋째 날에 땅과 바다를 창조하셨다. 넷째 날에 별들도 창조하셨다. 다섯째 날에 물고기와 함께 뭍에 사는 생물과 날개 있는 새를 창조하셨다.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역시 창조하신 식물들을 주셨다. 이렇게 천지와 만물을 보시기 좋게 이루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일주일만의 창조는 언제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役事)일까? 성경에 시기 언급은 없으나 신학자들은 대략 6000여 년 전이라고 추정하는 편이다.

창조와 다른 창발(創發·Emegence)의 사전적 정의는 전에 없던 것이 비로소 새롭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복잡계 이론에서 창발이란 혼돈(chaos)스런 상태에서 질서(cosmos) 있는 뭔가가 돌연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것도 혼돈의 중심보다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에서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는 열역학 제2 법칙을 위배한다. 무질서한 쓰레기 에너지인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열역학 제2 법칙! 거스를 수 없는 세상 자연의 법칙이다. 나의 에너지를 써서 힘들여 방 청소하지 않는 한 무질서한 엔트로피가 늘어나 방이 어지럽혀지는 것도 제2 법칙에 따른다. 그런데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가 저절로 잡힌다니? 무질서한 소립자들의 혼돈 상태에서 원자들이, 무질서한 원자들의 혼돈 상태에서 물질이, 무질서한 물질들의 혼돈 상태에서 생명이 창발되었다는 논리다. 삼라만상을 부품의 집합으로 돌이켜 환원(還元)하는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수억~수십억 년 세월 동안 복잡계에서 전개되는 일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런 사정을 이해 못 하면 창발론을 이해하기 힘들다. 창조론 관점에선 인간과 공룡이 지구에 같이 공존해야 한다. 모든 생명체는 6일 동안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에 당연히 공룡이 있다. 그러나 창발론 관점에선 6500만 년 전 공룡의 멸종 이후 6000만 년 지나 인간 종류의 인류가 창발되었다. 당연히 노아의 방주에 공룡은 없다. 이렇듯 하나님께선 인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지적 설계로 창발을 주관하시는 건 아닐까? 띄엄띄엄 불연속적 양자(量子) 상태로 물질이 창발되듯이 띄엄띄엄 따로따로 생명체의 불연속적 창발을 주관하시는 건 아닐까? 그래서 어떤 생명체에 대해 연속적 중간 단계 화석이 없는 건 아닐까? 창발적 창조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과연 진리는 무얼까? 생각이 혼란스럽기보다 혼돈스러워진다. 머릿속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뭔가 질서 잡힌 생각이 창발되려나? 창조는 못 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