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79] 흥청망청

bindol 2022. 7. 13. 03:35

[차현진의 돈과 세상] [79] 흥청망청

입력 2022.07.13 00:00
 
 

지난 5월 타계한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은 현실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비판한 작품이다. 그것 때문에 시인과 동료들이 고문을 당하고 출판사가 폐간되었다. 우리 현대사의 큰 상처다. 물론 왕조시대에는 훨씬 심했다. 풍자와 비판은 곧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불렀다.

1453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김종직이라는 선비가 이를 비판했다. 세조의 하극상을 항우가 초나라의 왕 의제를 시해한 일에 빗댄 글을 썼다. 그 글을 조의제문(弔義帝文)이라고 하는데, 워낙 폭발성이 커서 함부로 밝힐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제자들인 사림파가 조정에 진출하자 스승의 글을 공식 역사 기록인 실록에 남기려고 시도했다.

라이벌인 훈구파가 그것을 알아챘다. 40여 년 전의 그 글을 왕에게 일러바쳐 숙청을 부추겼다. 사림파에 대한 관직 박탈, 귀양, 능지처참, 그리고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이어졌다. 무오사화(戊午士禍)다. 사관의 역사 기록 때문에 시작되어 사화(史禍)라고도 한다.

 

1498년 무오사화로 조선의 정치판이 요동칠 때 서양도 조용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시민 정부가 붕괴되고 마키아벨리를 앞세운 메디치 가문이 다시 권력을 잡았다.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까지 이어지는 뱃길을 열고, 스페인의 콜럼버스는 카리브해에서 새로운 섬들을 발견했다. 이 모든 일은 각국의 왕권 강화로 이어졌다.

무오사화는 왕권이 강화되다 못해 왕의 악행이 통제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왕의 취미인 사냥을 위해 곳곳에 금표(禁標) 즉, 그린벨트가 세워졌다. 연산군은 그 안에서 흥청(興淸) 즉, 무희들과 술잔치를 벌이고 놀았다. 금표 밖으로 쫓겨난 백성들은 흥청망청이라며 왕을 저주했다. 김종직이나 김지하 같은 지식인들의 비판이 완곡했다면, 무지렁이 백성들의 권력 비판은 훨씬 격렬했다. 생존권을 위협받은 때문이다. 1498년 오늘 사관(史官) 김일손이 체포되었다. 무오사화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