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81] 영국의 중앙은행
“능력이 벽에 막히면, 그때부터 분노가 시를 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가 인간의 시기심을 꿰뚫어 보면서 뱉은 말이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한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심정이 그랬으리라.
국가는 인간의 집합이니, 국가 사이에도 시기심이 작동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의 거의 절반을 네덜란드 경제에 대한 찬사로 채웠지만, 영국은 부자 나라 네덜란드를 질투했다. ‘더치 엉클(잔소리꾼)’ ‘더치 커리지(술김에 부리는 호기)’ ‘더치 리브(무단 이탈)’처럼 네덜란드를 조롱하는 말을 쏟아냈다. 무역상들이 네덜란드 배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1651년 항해법).
그렇게 네덜란드를 질투했던 영국이 흉내 내기조차 포기한 것이 있다. 은행업이다. 1571년 서민 전용 은행법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중단했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직후 은행을 세워 그 예대 금리 차로 도심 재개발 비용을 마련하는 방안도 탁상공론으로 끝났다. 암스테르담 은행처럼 지급 결제 전문 은행을 만드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1688년 명예혁명 뒤에는 은행 설립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혁명을 도운 네덜란드와 영국이 가까워지자 프랑스가 경계하면서 시비를 걸어왔고, 혁명 정부는 서둘러 은행 설립에 나섰다. 그때 서민 금융이니, 지급 결제 선진화니 하는 따위의 고상한 말은 전부 무시했다. 오로지 전비(戰費)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 부자들에게 은행을 세우도록 하고 거기에서 연 8%의 높은 금리로 차입했다. 고금리를 불평하기는커녕 화폐 발행 독점권이라는 특혜까지 베풀었다.
의회가 ‘선박세, 주세 등 조세 수입을 담보로 하여 프랑스와 전쟁하는 데 필요한 전비 150만 파운드를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애국자를 우대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 긴 이름의 법률에 따라 1694년 오늘 영란은행이 문을 열었다. 영국의 중앙은행이다. 영란은행이 지금은 정부에 한 푼도 대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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