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9] ‘냉장고 엄마’ 이론

bindol 2022. 7. 26. 04:05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9] ‘냉장고 엄마’ 이론

입력 2022.07.26 03:00
 
 

1943년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 정신의학을 연구하던 리오 캐너(Leo Kanner)는 감정 교류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의 질환에 처음으로 ‘자폐증’(autis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자폐아를 만나고 치료하면서 이 병의 원인에 관심을 두었고, 자폐가 부모, 특히 엄마의 냉담한 태도에서 생긴다고 주장했다. 소아 정신 질환 전문가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도 자폐는 자식을 차갑게 대하는 냉장고 같은 엄마가 유발하는 병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자폐 아동의 엄마에게는 ‘냉장고 엄마’라는 호칭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냉장고 엄마’ 이론은 자폐 아동의 형제, 자매 중에 자폐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냉장고 같은 엄마는 모든 형제를 비슷하게 대했을 텐데, 형이나 동생은 멀쩡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64년, 자폐 아이를 둔 의사 버나드 림랜드는 ‘유아 자폐증’이라는 책을 출간해 ‘냉장고 엄마’ 이론을 통렬하게 반박했다. 냉장고 엄마 이론의 문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했다는 것이다. 부모가 냉정하게 대해서 자폐가 생긴 것이 아니라, 자폐 아이와 감정 교류를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보인 것이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면서 1970년대 이후 이 이론은 과학계에서 퇴출된다.

그러면서 자폐에 대한 유전적 설명이 등장했다. 유전적 설명은 수십 가지 유전자가 특정한 환경 아래 상호작용하면서 자폐를 유발한다고 본다. 이런 유전자는 부모 양쪽에게서 받을 수 있으므로 완전히 정상적인 부모라도 자폐아를 낳을 수 있다. 반대자들은 이런 유전적 설명을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비판했지만, 자폐 아이의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잘못 키워서 자폐가 됐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유전적 설명을 선호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산모가 임신 중에 화학물질, 술이나 담배 같은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 자폐증을 유발하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다시 자폐증의 원인으로 엄마의 ‘몸’이 강조되고 있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자폐증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자폐증의 역사를 성찰하듯 살펴보는 것이 자폐 아동의 엄마에게 가하는 비난의 무게를 덜어내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