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고전 속 정치이야기] 분적구지(分敵驅之)

bindol 2022. 9. 2. 05:46

[고전 속 정치이야기] 분적구지(分敵驅之)

천지일보

승인 2022-09-01 18:16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정치투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어떤 세력과 연합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 때문에 정치적 연합은 반드시 모순관계에 빠진다. 전력이 열세인 쪽은 상대의 모순을 이용해 분쟁을 일으키고 세력이 약화되기를 기다렸다가 적절한 찬스를 포착해 공격해야 한다. 이것이 분적구지이다. 전국시대에 제(), (), ()은 북방의 위협을 제거한다는 핑계로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연()을 침공했다. 다급해진 연은 태자를 초()에 파견해 구원을 요청했다. 연과 초는 수직으로 동맹을 체결해 삼국의 수평동맹에 대항하고 있었다. 이른바 종()과 횡()의 대결이었다. 초왕은 경양(景陽)을 장수로 삼아 연을 구하라고 명했다. 직접 동맹군을 공격해 연을 지원하기에는 초의 군사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총명한 전략가였던 경양은 동맹군 가운데 가장 막강한 위의 옹구(雍丘)를 습격했다. 본국이 위험하자 연을 공격하던 위군은 재빨리 후퇴했다. 경양은 옹구를 송()에게 선물로 주자고 건의했다. 초왕이 사신을 보내 그 이유를 추궁하자 경양이 대답했다.

우리의 파병 목적은 연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연이 포위에서 벗어났으니, 그까짓 작은 성 하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때문에 우리가 망할 위기에 처해서야 되겠습니까?”

사신은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경양이 대답했다.

겉으로 보면 우리가 옹구를 점령하자 연의 포위가 풀렸으며, 우리는 성 하나를 얻었으니 일거양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위험이 닥칠 것입니다. 우리 초는 군사력도 강하고 재정도 튼튼합니다. 그러나 제, , 위 등 삼국동맹에 비하면 실력이 모자랍니다. 우리에게 성을 빼앗긴 위는 복수심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동맹국인 연은 지금 막 전쟁을 끝냈기 때문에 우리를 지원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힘으로 삼국동맹군과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위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일단 전쟁에서 패하면 나라의 존망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저의 말을 황당하다고 하십니까? 우리가 옹구를 송에게 주면, 송은 우리에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우리가 어려워졌을 때 송에게 도움을 청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사신이 돌아가 보고하자 초왕은 흔쾌히 옹구를 송에게 줬다. 과연 얼마 후에 삼국동맹군이 연에서 군사를 돌려 초를 공격했다. 위의 대군이 초군의 서쪽을 압박하는 동안 제군은 초군의 동쪽을 압박했다. 퇴로가 차단된 초군은 위급해졌다. 뛰어난 전략가였던 경양은 제와 연합해 위를 치려는 계획을 세웠다. 동쪽과 연맹을 체결해 서쪽을 공격한다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경양은 일부러 제군의 진영으로 잇달아 사신을 파견해 담판하면서 마치 어마어마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처럼 허장성세를 펼쳤다. 낮에는 수레에 가득 예물을 싣고 제군의 진영을 찾아가게 했으며, 밤에는 의병(疑兵)으로 하여금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한군의 진영과 초군의 진영 사이를 오가게 했다. 동맹군은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다. 위군은 제와 한이 초와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군도 한과 초가 별도로 무슨 협약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먼저 제군이 철수하자 위기감을 느낀 한군도 철수해버렸다. 홀로 남은 위군도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다고 판단해 좋은 말로 화의를 요청하고 물러나 버렸다.

그러나 실제로 초는 제나 한과 특별한 내용을 담은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무엇인가 중요한 제안을 할 것처럼 사신을 파견했지만, 중요한 논의는 하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만 거론했다. 삼국동맹은 기본적으로 각국의 이익을 바탕으로 맺어졌을 뿐이었다. 그것이 동맹군의 한계였다. 경양은 연을 구해냈을 뿐만 아니라 교묘한 이간책으로 삼국끼리 의심을 조장해 싸우지 않고 위기에서 탈출했던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이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