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선연인생(嬋娟人生)
천지일보
승인 2022-09-08 18:0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소만수(蘇曼殊, 1884~1918)는 근대 중국의 풍류남아이자, 혁명문학단체 ‘남사(南社)’의 일원이었다. 1909년에 소주(蘇州)에서 창립한 남사는 북정(北庭) 즉 북경의 청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부친 소걸생(蘇杰生)은 일본 고베의 찻집 종업원이던 일본여자와의 사이에서 만수를 얻었다. 그러나 생모가 곧바로 사라지자, 아버지의 첩이 길렀다. 그는 자신을 ‘숨겨진 아이’라고 말했다. 고베의 대동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가 혁명활동의 참가자로 수배령이 떨어지자 출가했다. 만수는 법명으로 문수의 음역이다. 자유분방했던 그는 중국, 일본, 인도는 물론 동남아 일대를 떠돌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신해혁명 당시에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사나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칼날이 번쩍이는 가운데 두 사람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먼 타국에 있지만, 내 마음은 그곳으로 치닫는다. 장사는 칼을 비껴들고 격문을 읽고, 미인은 거문고를 끼고 시제를 청하면서 시대를 즐기는구나!”
그는 옛날 전단(田單)을 도와 제나라를 구하고 바닷가에 은거한 노중련(盧仲連)을 사모하며 부귀영화 때문에 기개를 꺾는 것보다 가난하지만 세상을 경시하며 자유롭게 살려고 했다.
유형명멸야유유(流螢明滅夜悠悠), 소녀선연불내추(素女嬋娟不耐秋).
상봉막문인간사(相逢莫問人間事), 고국상심지루류(故國傷心只淚流).
반딧불 깜박이는 밤은 너무 쓸쓸해, 소녀에게 가을은 더욱 괴롭다네.
서로 만나 인간사는 묻지도 못하고, 고국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린다네.
반딧불이 명멸하는 여름밤도 쓸쓸하지만, 잠자리 날개처럼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소녀에게 가을은 더욱 쓸쓸할 것이다. 소만수는 고통스럽지만 굳센 투쟁심이 부족한 자신을 가녀린 소녀에 비유했다. 그는 격렬한 혁명가가 되지 못했다. 현실과 자신의 한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출가해 초탈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의 마음은 모순으로 뒤범벅이 됐다. 그의 시는 대체로 처량하고 고달팠으며, 서늘하면서 고독했다. 어떤 사람은 화려하면서도 솜털처럼 부드러웠다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속세를 넘어 아득한 곳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소만수는 중화민국 원년(1912)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장편 ‘단홍영안기(斷鴻零雁記)’가는 외국어로도 번역됐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장면과 사물에 대한 세밀한 표현이 두드러졌다. 단편 ‘분검기(焚劒記)’에서는 서생 독고찬(獨孤燦)의 입을 통해 당시 세상은 너른 바다로 아무렇게나 흘러들어가는 꼴이라고 절규했다. 그의 작품은 저항적이었지만, 선불교와 융합된 해맑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투쟁보다는 미래를 향해 힘을 기르기를 원했다. 브라만어, 영어, 일어, 불어 등의 외국어에도 능통해 중국 최초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번역했다. 시승으로서 소만수는 서호의 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그가 머물렀던 남병산(南屛山) 백운암(白雲庵) 의주화상(意周和尙)은 이렇게 회고했다.
“소만수는 오갈 때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늘 빈털터리였으며, 암자에서 돈을 빌려 상해의 기생집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누군가 외국산 사탕과 담배를 가지고 왔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나중에 혼자 숨어서 사탕을 먹거나 담배를 피웠다. 낮에는 늘어지게 자다가 저녁이 되면 간단한 옷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소제(蘇堤)나 백제(白堤)를 거닐다가 날이 밝아서야 돌아왔다. 아무 곳에나 그림을 그렸으니, 그의 그림을 얻으려면 그가 손이 닿는 곳에 종이를 놓아두기만 하면 될 정도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 절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기인이었다.”
소만수는 백운암에서 두 해 여름을 보내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낙관을 찍고 시제를 남긴 것은 두 장밖에 없었다. 물신(物神) 숭배만 남은 세상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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