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내부충돌(內部衝突)
천지일보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근대 유럽의 민주주의 혁명은 중세 유럽의 봉건주의를 무너뜨렸다. 이는 분명한 역사적 진보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민주주의는 전쟁이라는 인류의 야만적 현상을 없애지는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민주제도가 가장 성행했던 시대에 발생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과 민주는 쌍둥이와 같다. 특정한 환경에서 민주정치는 오히려 전쟁을 촉진한다. 고대 그리스 군은 평민이 중심이었으며, 그들이 민주정치를 추동했다. 종군과 시민권은 로마에서 동의어였다. 미국의 흑인은 베트남전쟁에서 성조기에 헌신하면서 평등을 요구했다. 해전은 민주정치의 형성에 대해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그리스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살라미스해전이었다. 전함은 국가가 제공했으므로, 재산이 없는 평민도 참전할 수 있었다. 평민 위주의 영국함대가 1588년 알마타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민주주의의 서막이 올랐다. 프랑스혁명에서도 보통선거와 의무병역제도가 동시에 의회에 제출됐다.
대혁명 시기 프랑스는 봉건왕조에게 포위되자, 의무복무제를 채택해 봉건왕조의 군사력에 대항했다. 나폴레옹의 공화국 군대는 각 봉건왕조의 군대를 무력화시켰다. 패한 프러시아는 농노제도를 폐기하고 토지제도, 자치제도, 내각제도 등 개혁조치를 실행했다. 콩드르세는 보병이 민주주의를 일으켰다고 했으며, 풀러는 활강총으로 무장한 보병은 근대민주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나폴레옹 이후 전쟁은 결국 평민에게로 확장됐다. 민주국가는 국민에게 국가에 헌신할 것을 요구했고, 국가는 이론적으로 국민에게 속했다. 근대 전쟁은 총체적 전쟁으로 변하면서 세계를 야만적 원시전쟁의 시대로 되돌렸다. 토인비는 프랑스혁명이 전쟁으로 연결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풀러는 토인비가 민주의 원동력은 사랑이고, 민주는 평화를 사랑하는 제도라는 신화의 함정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풀러는 야만과 문명사회를 막론하고 대외적 자위와 대내적 단결이 필수적이므로 외부에 대한 적의와 내부의 화합이라는 두 가지 준칙이 병존한다고 생각했다. 사회마다 적대적 감정과 우호적 관념은 내외의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외부민족과의 전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내부의 불화는 집단내부의 전투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다툼을 방지하고 기율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집단은 내부의 규범을 위해 정부와 법률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전쟁과 평화는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상호 발전하지만 하나는 집단의 내부, 다른 하나는 집단과 집단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의 도덕적 표준 또는 태도가 나타난다. 대외전쟁에서는 살인, 약탈, 강간마저도 전공에 해당하지만, 내부집단에서 이러한 행위는 범죄에 해당한다. 키루스의 아버지는 장군이라면 음모꾼, 사기꾼, 소매치기, 강도가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플라톤은 ‘정의는 친구를 도와 적을 해치는 것’이라고 했으며, 홉스는 ‘전쟁에서 위력과 속임수는 두 가지 큰 미덕’이라고 했다.
인류의 가장 위험한 적은 인류였다. 인류의 본성은 아름다운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야만과 잔인함이다. 두려움은 가장 큰 보편적 심리로 인류의 본능을 형성했다. 이 점은 야만인과 문명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언제 멸족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두려움은 현대인의 영혼에서 깊이 잠복해있다. 근대민주제도는 국가라는 방대한 집단단위를 형성했다. 국가는 국민에게 외부집단을 증오하며 전쟁에 참가하라고 부추긴다. 근대민주제도는 전쟁에 수많은 인력을 제공했다. 그 근저에는 군중심리가 작용한다. 민주제도는 내부집단의 도덕, 감정, 관념을 움직여 외부집단을 소멸시키려는 의지로 작용할 수 있다. 원한은 자기의 부족, 종파, 당파, 민족, 국가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람들을 자극해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현대민주주의는 외부로 향하던 적대의식을 내부로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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