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7] 노동 찬가
1970년대에 건강하고 상식적인 중산층 주부였던 나의 어머니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업이 최고”라고 하셨다. 규칙적인 노동과 예측 가능한 경제적 보상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가치관은 이제 유효성을 잃어가는 듯 하다. 자본주의 고도화와 기술 발전이 노동의 양상을 급격히 바꾸었다. 이에 발을 맞춰서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면 언제라도 은퇴하고 싶은 ‘파이어(Finant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 즉 일하지 않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20세기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노동에 대한 찬미는 동서를 막론하고 산업화가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시대의 공통된 화두였다. 특히 6·25 전쟁 이후 한국 사진은 규범화된 예술사진을 넘어서 현실을 직시하고 삶의 진실된 힘을 담고자 했던 시도로 활기를 띠었다. 리얼리즘의 기치 아래 작가들은 거리로 나갔다. 이형록(1917-2011)은 노동과 일상의 진솔함이 시대를 뛰어넘는 힘을 지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과 ‘신선회(新線會)’ 등을 결성하였고, 이는 임응식(1912-2001)에 의해서 ‘생활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명명된 당시 한국사진의 지배적인 경향과도 결을 같이하였다.
선생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거리의 구두상(1956)’은 한국미술가협회 사진 부문에서 특선을 하며 발표 당시부터 관심을 받았다. 길거리 담벼락이라는 배경이 무색하게 잘 차려진 가게에는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구두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었다. 구색을 갖춰 걸려 있는 가방과 우산들은 이 가게의 주인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업에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호객을 하는지 우렁찬 소리를 내는 듯한 주인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고 패기에 차 있다. 구두 장수인 그의 남루한 행색과 낡고 헤져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한 그의 신발은 지금도 삶의 고단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당시 이형록이 선택한 리얼리즘은, 국전 사진 부문을 비롯한 국내외 공모전은 물론이고 각종 국제사진공모전에서 동인들이 연달아 입상하면서 공인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 노동에 대한 찬미는 과연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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