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고구려·발해를 중국 역사 일부로 둔갑시키려 해요

bindol 2022. 10. 2. 19:15

 

[뉴스 속의 한국사] 고구려·발해를 중국 역사 일부로 둔갑시키려 해요

입력 : 2022.09.29 03:30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지난 2월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아랫줄 왼쪽에서 둘째)이 다른 소수민족 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는 모습. /김지호 기자
 
 
최근 중국 베이징에 있는 국가박물관이 한·중·일 청동기 유물 전시의 '한국 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빼는 일이 발생해 물의를 빚었어요. 한국 측의 항의를 받고 연표를 떼 냈지만, '고구려와 발해는 한국 역사가 아니다'라는 중국의 잘못된 생각을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어요. 중국은 왜 한국 고대사를 자기 나라 역사로 빼앗아가려 하는 것인지,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억지 논리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중국은 예부터 고조선이나 부여·고구려 같은 한국사의 고대 국가들을 자기 나라의 일부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 학자인 존 덩컨 UCLA 명예교수는 "중국의 역사서들은 고구려를 본기(本紀·제왕의 역사를 기록한 부분)가 아니라 동이전(東夷傳) 같은 열전(列傳·사람의 전기나 다른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부분)에 수록함으로써 분명히 타자(他者)로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했어요. 고조선과 부여·발해 역시 중국 역사서의 열전에 기록됐습니다. 당연히 중국이 아닌 외국의 역사라는 의미였죠.

이런 사고방식은 지난 수천년간 줄곧 이어 왔고, 1949년 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82년 출간된 '중국역사지도집'에도 고구려는 분명 중국의 영역 밖에 있는 나라로 표시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중국이 국가 통합을 위한 논리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이게 무슨 이론인가 하면, 현재의 중국은 '여러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룬 나라'라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는 한족(漢族)의 역사뿐 아니라, 지금 중국 영토 내에 살고 있는 여러 소수민족의 역사 역시 중국의 역사라는 얘기죠.

이것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논리인지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의 튀르키예 영토 안에는 과거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 비잔틴 제국의 유적이 있고, 사도 바울 등이 활동하던 초기 기독교 유적 또한 있습니다. 중국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현 튀르키예 영토 안에서 일어났던 이 모든 역사가 '튀르키예 역사'가 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게 주장한다면 국제적인 비난을 받게 되겠죠. 그런데 지금 중국이 바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제와 신라도 중국사 일부" 주장까지

1980년대 중반부터 일부 중국 학자가 '고구려는 중국사에 속한다'고 주장했을 때만 해도 한국인들은 그 심각성을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부터 중국 정부가 나서서 이 작업을 국책(국가적인 정책) 사업으로 공식 진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동북공정'이었습니다.

이 작업의 주체인 '변강사지연구중심'은 중국 공산당이 직접 관할하는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소속이었죠. 겉으로는 중국의 동북 지역(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겠다는 프로젝트였지만, 사실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라는 정치적 목적의 이론을 기반으로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의 한국 고대사를 침탈해 자기 나라 역사로 둔갑시키려는 작업이었습니다.

동북공정에 참여한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강변하며 "고구려는 중국 역대 왕조에 신하로서 복속된 나라"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외교 관계인 조공·책봉 관계의 성격을 완전히 무시한 주장이었습니다. 중국의 이웃 나라들이 중국 왕조를 '황제의 나라'로 인정하는 대신 자기 나라의 군주로 인정받고(책봉), 사절을 보내 예물을 전달하는(조공) 것이 조공·책봉 관계였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구속력을 갖는 관계가 아니라 의례적인 관계였는데, 고구려와 중원 왕조는 조공·책봉 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수시로 전쟁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조공·책봉은 꼭 힘이 약한 나라가 중원의 강대한 나라의 군사력을 두려워해서 맺는 관계도 아니었는데, 후백제의 견훤은 굳이 바다 건너 양쯔강 하류에 있던 중국 오대십국의 한 나라인 오월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습니다. 정치적 권위 수립, 외교, 문화 교류 같은 여러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관계를 '중앙정부와 지방정권'의 관계로 왜곡해서 본다면 한국사의 역대 왕조 전체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셈입니다.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주장 속에 사실은 '한국사 전체가 중국사'라고 강변할 발톱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죠. 중국 사회과학원은 2001년 한 연구서에서 "백제와 신라도 중국사의 일부"라는 왜곡 주장을 펼친 적도 있었습니다.

"아시아 역사 통째로 침탈하려 하나"

2003년 중국의 동북공정 소식이 알려진 뒤 많은 한국인은 크게 놀라며 중국의 역사 왜곡을 규탄(잘못을 따지고 나무람)했습니다. 이것이 한·중 사이에서 외교적 문제가 되자, 2004년 한국과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에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구두 합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중국 정부의 주도로 이뤄진 동북공정은 순수한 '학술 문제'가 아니었고, 중국은 계속해서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물밑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끝난 2007년 이후에도 지린성 사회과학원은 10년 동안 고구려사 왜곡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2017년 한국인들은 한 외신 보도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한 뒤 "시 주석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하더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를 두고 한 한국 학자는 "중국의 한국 역사 침탈이 '굳히기' 단계에 들어간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2020년 한복과 김치도 중국 것이라고 주장했던 중국의 이른바 '한복공정'과 '김치공정'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왜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사 전체가 중국사의 일부라고 본다면 한복이나 김치 같은 한국 문화도 '중국 문화 중 하나'라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최근 중국의 박물관 연표 왜곡 사건 역시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역사 왜곡은 한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에 큰 위협이 되는 요소입니다. 중국은 동북공정 이전 '서남공정' '서북공정'을 통해 티베트와 위구르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했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권을 지닌 나라인 몽골과 베트남의 역사까지도 자기들 역사에 넣는 침탈 작업을 벌여 왔습니다. "아시아의 대부분을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것이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베이징에 있는 국가박물관이 한·중·일 청동기 유물 전시의 ‘한국 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빼는 일이 발생해 물의를 빚었어요. 사진은 한국 측의 항의를 받고 고구려와 발해를 뺀 한국 역사 연표를 철거한 지난 16일 박물관의 모습. /연합뉴스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유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