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6695]許皇后의 故鄕碑 발행일 : 2006.01.21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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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옛 지도를 살펴 아유타국이 인도 남동쪽 아요디아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아요디아국이 1세기에 북방 월지족(月氏族)의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층은 쫓겨나 중국 서남 고원지대를 거쳐 사천지방인 촉(蜀)나라에 정착한 것으로 보았다. 허황후의 능비에 ‘보주태후(普州太后) 허씨릉’이라 쓰인 데서 허황후가 보주(普州)란 곳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추적한 끝에 보주가 사천성 안악현(安岳縣)임을 알아낸 것이다. 그곳에서 서기 48년 전해에 반란을 일으켜 다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는데 그 반란을 주모한 가성(家姓)이 허씨라는것도 후대 기록에서 확인했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인도 소녀인 허황옥은 오빠와 더불어 장강(長江)을 타고 삼협(三峽)을 거쳐 황해로 나와 김해 앞바다에 이른 보트 피플이었던 것이다. 이 허황후의 이동 지역을 꿰는 문화의 공통분모로 김 교수는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쌍어(雙魚)신앙을 들었다. 인도 아요디아의 사원이나 풍물에 쌍어가 흔한 것을 보았고 중국 보주에서도 확인했으며 김해 수로왕릉의 정문에도 이 천축문화인 쌍어가 새겨져 있다. 허황후의 오라버니인 장유화상(長遊和尙)이 세웠다는 은하사(銀河寺)에서도 두 쌍의 쌍어를 찾아볼 수 있다. 언어학자로부터 가락이라는 말이 인도 고대어에서 물고기를 뜻한다는 것도 알아내어 이 허황후의 궤적을 문화적으로도 입증한 셈이다. 이 같은 역사궤적을 확인하는 연구결과가 한국유전체학회에 보고됐다. 곧 허황후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왕족 유골에서 북방계가 아닌 인도의 남방계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역사 속으로의 궤적이나 유전질 탐험이 필요한 사항이 비일비재한데도 방치돼 있다는 것을 새삼 통감케 하는 장거가 아닐 수 없다.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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