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73]벌거벗고 밭갈기

bindol 2022. 10. 3. 05:49
[이규태코너][6673]벌거벗고 밭갈기 발행일 : 2005.11.11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갓 개관한 새 국립박물관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 서 있고 박물관장도 관심이 쏠리는 유물이라고 지적한 전시물이 벌거벗은 채 쟁기로 밭갈이하는 선각(線刻) 그림의 청동기라는 보도가 있었다. 나경(裸耕)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농경민속이 청동기시대까지 소급된다는 고증물로서도 의미가 있는 유물이다. 옛 우리 농촌에 마을 일을 보는 직책을 머리나이, 곧 수총각(首總角)이라 불렀는데 총각이 아닌데도 그런 이름으로 불린 데는 연유가 있다.

고대인의 사고방식으로 농사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풍흉(豊凶)은 마치 부부가 성교로 아들 딸 많이 낳듯 천지간의 교접으로 좌우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풍년을 비는 제사에는 이 유사(類似) 성행위를 연출해야 한다는 발상은 합리적이며 그 성행위의 대행자로서 수총각을 탄생시켰다. 풍년을 부르는 생식(生殖) 파워는 총각일수록 강하기에 풍년제의 제주는 총각이어야만 했다. 일제 때까지만도 관북 관동지방에서는 이 나경이라는 풍년제가 베풀어졌었는데 정월 대보름날 전야 수총각으로 하여금 토우(土牛)나 목우(木牛)로 밭을 갈게 하는데 토우는 짚으로 소처럼 만들어 붉은 흙칠을 한 인조 소요, 목우는 멍에를 끼워 두 사람으로 하여금 몰게 하는 인간 소로, 이때 소를 모는 수총각은 베 나부랭이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어야 했다. 성기가 가려지지 않은 채 대지에 가까울수록 생식력이 강해진다고 여긴 때문이다. 대보름날에 베풀었던 이 나경을 전야로 옮긴 것은 부녀자들이 몰려와 시시닥거리기 마련이라 부정탄다 하여 벌거숭이 하체가 보이지 않는 밤으로 옮겨 베푼 것이었다. 이 제주 명칭인 수총각이 그 제사가 사라진 후에도 마을 일 보는 직책명으로 보존해 내린 것일 게다.

풍년을 비는 데 성행위의 주술적 이용은 이밖에도 많았다. 고추나 감자 등 많은 결실을 바라는 작물을 모종할 때 다산한 여인의 품을 비싸게 주고 사서 대행시키는 것이며 무녀들로 하여금 속곳을 입지 않은 채 치마를 들추며 캉캉춤을 추게 하여 그 음풍(陰風)으로 비를 몰고 오게 하는 기우제도 그것이다. 청동기의 나경 선각은 한국 고대인의 사고방식을 추정하는 희귀한 자료로서도 평가받을 것이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