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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6674]백제미의 재발견

bindol 2022. 10. 3. 05:48
[이규태코너][6674]백제미의 재발견 발행일 : 2005.11.14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한 해에 한 번씩밖에 열지 않는다는 일본 고대 유물전인 쇼소인덴(正倉院展)을 보고 왔다. 땅 속에 묻혔거나 탑 속에 갇혀 보존돼 오던 희귀한 삼국시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해서 별러 왔던 터다. 올 전시품은 신라 통일 50여 년 후에 집권했던 쇼부(聖武)왕이 일상적으로 쓰던 물건들인데 그중 하이라이트가 바둑알이다. 상아에 붉은 물과 감색(紺色)물을 들인 데다 꽃가지 문 새를 그린 바둑알 10개씩과 자단(紫檀)으로 만든 바둑판으로, 인파를 피해 까치발 딛고서야 볼 수 있을 만한 성황이었다. 슬쩍 집어 손자 갖다 주고 싶은 충동이 나리만큼 그 빛깔이 1400년을 감당하고도 영롱한 것이 여운을 끌었다. 지구 멸망이 닥쳤을 때 비상 반출할 지구 문화재를 물었을 때 앙드레 말로는 밀로의 비너스와 백제관음(百濟觀音)을 들었다. 그 백제관음이 백제미의 큰 표현이라면 저 바둑알은 백제미의 작은 표현이라 해도 대과가 없어 보였다.

한국에서 건너갔거나 영향받은 것을 밝히는 데 인색해온 일본이 이번 바둑알만은 그리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쇼부왕비인 고메이(光明)왕후가 쇼부왕이 쓰던 유물들을 동대사(東大寺) 대불(大佛)에 바칠 때 작성한 ‘국가진보장(國家珍寶帳)’에 이 바둑알에 대해 언급,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당시 일본의 실권자인 내대신(內大臣) 후지와라(藤原鎌足)에게 선물한 것이 일본 궁중으로 들어간 것으로 적혀 있다. 더불어 전시된 바둑판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바둑판의 교차점을 표시하는 화점이 일본에서는 예부터 9개인데 이번에 전시된 자단나무 바둑판은 한국 전통 화점 수와 같은 17개라는 것을 들어 한국에서 전래됐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바둑알이 일본에 건너간 지 700여 년 후인 1492년 가을 비 오는 날에 일본 막부(幕府)의 6대 장군인 아시가가(足利義敎)가 동대사에 들렀을 때 이 바둑알을 보고 세 알을 집어들고 나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앙드레 말로처럼 그 아름다움에 심취했거나 손자 갖다 주고 싶은 생각이 났었는지 모를 일이다. 백제 바둑알의 출현으로 상아나 자단 같은 남방 문물의 교역과 고체물에의 변색 없는 화려한 염색, 미세 조각의 손재간의 뿌리가 백제에 소급되고 있음을 알게 하는 백제미의 재발견이 아닐 수 없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