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6676]무문관(無門關) 발행일 : 2005.11.18 / 여론/독자 A34 면

불교는 보리수 아래에서의 석가의 깨우침에서 시작된다. 그 깨우침을 말로써 설법했으나 인간의 말의 불완전함과 이를 듣는 사람들의 능력이 낮아서 석가는 깨우침의 그 모두를 설법할 수가 없었다. 그 석가가 설법하지 못한 심오한 것들을 모아 전수하려는 것이 선(禪)이요, 이 선에 대한 시험문제가 공안(公案)이다. 곧 훌륭한 스님들의 말이나 행동들을 가리켜 ‘당신 같으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하고 묻는 것이 공안이다. 송나라 무문혜개(無門慧開)가 편찬한 옛 고승들의 공안 48칙(則)을 모아 낸 책이 ‘무문관(無門關)’으로 선림(禪林)에서 가장 널리 읽혀 내린 성전이랄 수 있다.
혜가선사(慧可禪師)는 구도를 위해 폭설 속에 소림사의 달마대사(達磨大師)를 찾아간다. 눈이 가슴을 메우는데도 달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혜가가 팔 하나를 손수 잘라가면서 속세의 그 많은 문들을 헤쳐 무문(無門) 문전에 이르렀음을 선문(禪問), 곧 공안을 통해 입증하고서야 달마는 그 무문의 문을 열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계룡산 갑사 대자암 무문관에서 3년간 갇혀 수도하는 25명의 스님들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두어 평 남짓한 방에 밥구멍 하나만이 뚫렸을 뿐 속세와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에서 무수한 마음의 문들을 차례로 열어가며 무문지경으로 접근하는 스님들이다. ‘아무것 없는 하얀 벽에 현란하게 영사된 심상(心象)과 싸워 안개처럼 사라지면 또 한 문을 열고 싸우길 거듭하기에 심심하지는 않다’던, 벽을 사이에 둔 한 스님과의 대화가 여운을 끈다.
(kyoutaelee@chosun.com)
발행일 : 2005.11.18 / 여론/독자 A34 면

불교는 보리수 아래에서의 석가의 깨우침에서 시작된다. 그 깨우침을 말로써 설법했으나 인간의 말의 불완전함과 이를 듣는 사람들의 능력이 낮아서 석가는 깨우침의 그 모두를 설법할 수가 없었다. 그 석가가 설법하지 못한 심오한 것들을 모아 전수하려는 것이 선(禪)이요, 이 선에 대한 시험문제가 공안(公案)이다. 곧 훌륭한 스님들의 말이나 행동들을 가리켜 ‘당신 같으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하고 묻는 것이 공안이다. 송나라 무문혜개(無門慧開)가 편찬한 옛 고승들의 공안 48칙(則)을 모아 낸 책이 ‘무문관(無門關)’으로 선림(禪林)에서 가장 널리 읽혀 내린 성전이랄 수 있다.
혜가선사(慧可禪師)는 구도를 위해 폭설 속에 소림사의 달마대사(達磨大師)를 찾아간다. 눈이 가슴을 메우는데도 달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혜가가 팔 하나를 손수 잘라가면서 속세의 그 많은 문들을 헤쳐 무문(無門) 문전에 이르렀음을 선문(禪問), 곧 공안을 통해 입증하고서야 달마는 그 무문의 문을 열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계룡산 갑사 대자암 무문관에서 3년간 갇혀 수도하는 25명의 스님들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두어 평 남짓한 방에 밥구멍 하나만이 뚫렸을 뿐 속세와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에서 무수한 마음의 문들을 차례로 열어가며 무문지경으로 접근하는 스님들이다. ‘아무것 없는 하얀 벽에 현란하게 영사된 심상(心象)과 싸워 안개처럼 사라지면 또 한 문을 열고 싸우길 거듭하기에 심심하지는 않다’던, 벽을 사이에 둔 한 스님과의 대화가 여운을 끈다.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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