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6676]무문관(無門關)

bindol 2022. 10. 3. 05:45
 

[이규태 코너][6676]무문관(無門關) 발행일 : 2005.11.18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변 사또 춘향을 잡아다 묶어놓고 난장을 치고 주뢰를 틀어도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렇게 중얼댄다. “그년이 갇힌 문짝이 나무 문이면 목수를 불러 부수고 쇠문이면 대장장이를 불러 부수고 돌문이면 석수를 불러 부수련만…” 한다. 춘향이 갇힌 마음의 문은 이렇게 목수 석수가 아니라 핵 에너지로도 부술 수 없는 문이다. 문에는 춘향이처럼 정조의 문도 있고 성삼문처럼 충절의 문도, 조광조처럼 도의의 문도 있다. 반면에 금욕(金欲)·권욕(權欲)·명욕(名欲)문, 삼치(三痴)의 문, 오악(五惡)의 문, 칠혹(七惑)의 문도 있다. 그 문들을 모두 젖히고 들면 문이 없는 무문지경(無門之境)에 이른다.

불교는 보리수 아래에서의 석가의 깨우침에서 시작된다. 그 깨우침을 말로써 설법했으나 인간의 말의 불완전함과 이를 듣는 사람들의 능력이 낮아서 석가는 깨우침의 그 모두를 설법할 수가 없었다. 그 석가가 설법하지 못한 심오한 것들을 모아 전수하려는 것이 선(禪)이요, 이 선에 대한 시험문제가 공안(公案)이다. 곧 훌륭한 스님들의 말이나 행동들을 가리켜 ‘당신 같으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하고 묻는 것이 공안이다. 송나라 무문혜개(無門慧開)가 편찬한 옛 고승들의 공안 48칙(則)을 모아 낸 책이 ‘무문관(無門關)’으로 선림(禪林)에서 가장 널리 읽혀 내린 성전이랄 수 있다.

혜가선사(慧可禪師)는 구도를 위해 폭설 속에 소림사의 달마대사(達磨大師)를 찾아간다. 눈이 가슴을 메우는데도 달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혜가가 팔 하나를 손수 잘라가면서 속세의 그 많은 문들을 헤쳐 무문(無門) 문전에 이르렀음을 선문(禪問), 곧 공안을 통해 입증하고서야 달마는 그 무문의 문을 열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계룡산 갑사 대자암 무문관에서 3년간 갇혀 수도하는 25명의 스님들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두어 평 남짓한 방에 밥구멍 하나만이 뚫렸을 뿐 속세와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에서 무수한 마음의 문들을 차례로 열어가며 무문지경으로 접근하는 스님들이다. ‘아무것 없는 하얀 벽에 현란하게 영사된 심상(心象)과 싸워 안개처럼 사라지면 또 한 문을 열고 싸우길 거듭하기에 심심하지는 않다’던, 벽을 사이에 둔 한 스님과의 대화가 여운을 끈다.

(kyoutaelee@chosun.com)

 

발행일 : 2005.11.18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변 사또 춘향을 잡아다 묶어놓고 난장을 치고 주뢰를 틀어도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렇게 중얼댄다. “그년이 갇힌 문짝이 나무 문이면 목수를 불러 부수고 쇠문이면 대장장이를 불러 부수고 돌문이면 석수를 불러 부수련만…” 한다. 춘향이 갇힌 마음의 문은 이렇게 목수 석수가 아니라 핵 에너지로도 부술 수 없는 문이다. 문에는 춘향이처럼 정조의 문도 있고 성삼문처럼 충절의 문도, 조광조처럼 도의의 문도 있다. 반면에 금욕(金欲)·권욕(權欲)·명욕(名欲)문, 삼치(三痴)의 문, 오악(五惡)의 문, 칠혹(七惑)의 문도 있다. 그 문들을 모두 젖히고 들면 문이 없는 무문지경(無門之境)에 이른다.

불교는 보리수 아래에서의 석가의 깨우침에서 시작된다. 그 깨우침을 말로써 설법했으나 인간의 말의 불완전함과 이를 듣는 사람들의 능력이 낮아서 석가는 깨우침의 그 모두를 설법할 수가 없었다. 그 석가가 설법하지 못한 심오한 것들을 모아 전수하려는 것이 선(禪)이요, 이 선에 대한 시험문제가 공안(公案)이다. 곧 훌륭한 스님들의 말이나 행동들을 가리켜 ‘당신 같으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하고 묻는 것이 공안이다. 송나라 무문혜개(無門慧開)가 편찬한 옛 고승들의 공안 48칙(則)을 모아 낸 책이 ‘무문관(無門關)’으로 선림(禪林)에서 가장 널리 읽혀 내린 성전이랄 수 있다.

혜가선사(慧可禪師)는 구도를 위해 폭설 속에 소림사의 달마대사(達磨大師)를 찾아간다. 눈이 가슴을 메우는데도 달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혜가가 팔 하나를 손수 잘라가면서 속세의 그 많은 문들을 헤쳐 무문(無門) 문전에 이르렀음을 선문(禪問), 곧 공안을 통해 입증하고서야 달마는 그 무문의 문을 열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계룡산 갑사 대자암 무문관에서 3년간 갇혀 수도하는 25명의 스님들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두어 평 남짓한 방에 밥구멍 하나만이 뚫렸을 뿐 속세와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에서 무수한 마음의 문들을 차례로 열어가며 무문지경으로 접근하는 스님들이다. ‘아무것 없는 하얀 벽에 현란하게 영사된 심상(心象)과 싸워 안개처럼 사라지면 또 한 문을 열고 싸우길 거듭하기에 심심하지는 않다’던, 벽을 사이에 둔 한 스님과의 대화가 여운을 끈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