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6576> 예리코

bindol 2022. 10. 8. 10:52

[이규태 코너] <6576> 예리코

조선일보
입력 2005.03.27 19:02 | 수정 2005.03.28 06:28
 
 
 
 

예루살렘을 나와 동쪽으로 차를 몰면 은전 30량에 예수 그리스도를 판 배신자 유다가 목매어 죽었다는 올리브 고목이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베드로는 적기를, '유다는 엎어져 죽어 있었다'고 했다. 하늘을 보고 죽을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자세다. 이 배신자의 동산에서 조금 더 가면 세례 받은 예수가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는 황야에 이른다. 옛 유대인들은 1년에 한 번 이 황야에 양 한 마리 몰고 와 자신의 죄를 실어 이 황야에 내모는 속죄의 의식을 베풀었다. 스케이프고트ㅡ바로 속죄양(贖罪羊)의 고향인 것이다. 그 황야에 그리스도가 40일간 단식하며 유혹을 물리친 사순산(四旬山)이 솟고 그 단식 현장에서 고금의 정신 지도자들은 리더십을 다지고자 40일 단식을 해 왔다. 영국 부인참정권론자 에밀리 펑크허스트, 베트남 반전 지도자 딕 그레고리, 아일랜드 독립 지도자 맥스위니 그리고 근간에는 유럽의 이라크 반전 지도자들이 거쳐갔다고 전한다.

이 유혹의 산을 지나면 해면보다 250미터나 낮은 세계 최고(最古) 최저(最低)의 도시 예리코가 나온다. 한국 성서에 여리고로 나오는 이 도시를 요시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공략했을 때 피리 불며 성을 돌자 이렛날 만에 성벽이 무너졌다던ㅡ, 흑인영가 '예리코의 싸움'의 바로 그 현장이다.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사랑의 선물로 바쳤던 도시요, 예수가 탄생했을 때 유아 살해령을 내린 헤롯왕이 지배했던 수도이기도 하다. 예리코의 역사를 기원전 1600년까지 소급시키는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데 바빌로니아와의 전투유적, 아랍과의 전쟁유적, 페르시아의 침공유적 그리고 십자군과의 전투 유적에 이르기까지 수십층층의 전쟁 역사박물관이라 해도 대과가 없다.

10여년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의 예리코 자치권이 합의됐을 때 평화가 찾아온 줄 알았다. 한데 자살폭탄테러의 폭음과 매연으로 매캐해지며 다시 이스라엘 지배에 들어갔던 중동 전운(戰雲)의 상징적 도시다. 지금 팔레스타인 화해무드를 타고 그 예리코 자치권이 팔레스타인에 넘겨졌다. 전쟁유적을 한 겹 더 쌓아올리는 것 이외에 예리코의 숙명으로부터의 탈피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