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6532> 부모파업

bindol 2022. 10. 10. 08:31
조선일보
입력 2004.12.12 18:19
 
 

20세기 4반세기 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힌 10대 소설 가운데 3권이 아버지의 권위를 주제로 하고 있다. 구미(歐美)사회에서 아버지의 권한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장ㆍ단편 소설들로 쇠퇴해가는 부권(父權)의 반동으로 보았다. 쉬엔헤르의 ‘토지(土地)’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 그리고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다. 아버지 마테오가 출타 중에 헌병에게 쫓기는 독립군 패잔병이 산속 농가에 은신처를 구해 찾아든다. 집을 지키고 있던 아들은 뒤쫓아온 헌병으로부터 회중시계의 유혹을 받고 은신처를 가르쳐준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장총을 꺼내들고 아들을 앞세워 들판에 나아간다. 총소리가 났다. 돌아온 마테오는 어머니에게 놈을 위해 기도해주라고만 하고 어머니도 기도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잔인할 정도로 냉혹했던 부모의 권위를 단적으로 대변해 주는 ‘마테오 팔코네’다.

미국의 어머니들은 아기 기르는 데 밀크타임 등 정해진 시간 아니면 아무리 칭얼대고 울어대도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울다 지쳐 머리로 부엌문을 밀치고 들면 마치 개에게라도 하듯 발로 밀치고 문을 닫아버린다. 아장아장 걸을 때도 가죽끈으로 가슴팍을 매어 개처럼 몰고 다닌다. 본이 목축 민족의 후예라 이처럼 응석과 단절되어 가축 기르듯 하기에 무섭게 부모의 영이 선다. 아버지가 현관에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면 형제자매들은 후닥닥 자신들의 정위치에 돌아가야했다고 작가 도스 파소스는 회고했다. 10여년 전 시카고에서 가족 캠핑 중 다이빙하다가 머리를 다친 고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다이빙을 말리지 않았다 하여 부모를 건 소송사건이 미국에 충격을 주었었다. 이를 두고 미래학자 토플러는 20세기는 미국을 최강대국으로 만들었지만 속으로는 미국정신을 지탱할 끈이 썩어 문드러진 최약소국으로 타락시켰다고 했다.

20세기 말의 부모 소송은 그래도 약과다. 집안일은커녕 제 방정리도 않는 10대 남매에 항의, 부모가 텐트를 치고 파업에 들어갔다는 보도는 세계정신사의 흐름이 위기에 접어들었다는 지표다. 엄부모(嚴父母)주의의 미국에서의 일이고 보니 연부모(軟父母)주의의 우리 발밑이 그 더욱 저려오른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