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6530> 黨名 바꾸기

bindol 2022. 10. 10. 08:34

조선조 최초의 당파싸움인 왕자의 난 때 태조의 뜻을 받들어 방석(芳碩) 편을 든 정도전 등을 제당(弟黨)이라 했고, 방원(芳遠) 편을 든 하륜 등을 형당(兄黨)이라 일컬었다. 방원과 방석은 배다른 형제였기 때문이다. 나라의 권력이 왕에게 집중돼 있었기에 그 힘을 나누어 누린 왕족의 관계로 당파를 호칭하게 마련이었다.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을 때 한명회 등 쿠데타에 참여했던 정난파를 숙당(叔黨)이라 했고, 그 불의에 항거한 사육신 등을 질당(姪黨)이라 호칭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명종 때 문정왕후(文定王后) 집권 시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의 파당이 싸웠는데 왕후의 숙질 간 싸움이기에 얻은 당명이다.

중세에 들어 왕족 아닌 인물 위주로 파당이 갈라져 정권을 탐했기로 그 파당을 이끄는 중심인물이 사는 집의 방향이나 늙고 젊음으로 당명을 삼던 시절도 있었다. 선조 때 외척인 심의겸(沈義謙)의 집이 한양의 서쪽인 정동에 있었기에 그를 추종하는 당파를 서인(西人)이라 하고 왕도정치를 내세운 김효원(金孝元)이 동대문 근처에 있었기로 그를 추종하는 당인을 동인(東人)이라 했다. 다시 동인이 강온파로 갈라져 강경파인 이발의 집이 북악 아래 있다 해서 북인으로 불리고, 온건파인 우성진이 남산 아래 산다 하여 남인으로 당명이 동서남북화한 것이다. 예의 절차를 헌법처럼 중요시했던 시절 그 예송(禮訟)에서 노대가(老大家)인 송시열(宋時烈)의 주장을 따랐던 당파가 노론(老論)이요 소장파인 윤증(尹拯)의 주장을 따랐다해서 소론(少論)이었고ㅡ.

근대정당은 세계적으로 보수-혁신으로 양분화하고 다시 보혁이 강온으로 갈라져 사분(四分)하는 추세에 있다. 보수 이념의 정당들은 당명으로 보수-국민-공화-민주-자유 등을 선호하고 혁신 이념의 정당들은 사회-노동-인민-근로-진보-민중 등을 선호해왔다. 대선과 민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그 여울로부터 국민의 인식을 구해내고자 당명을 바꾸기로 했다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당명보다는 강한 리더십과 강한 야성과 강한 당심에의 결속으로, 이 삼강(三强)을 구심시키는 당명이었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