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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369] 촬영삼매(撮影三昧)

bindol 2022. 10. 24. 04:56

[조용헌 살롱] [1369] 촬영삼매(撮影三昧)

입력 2022.10.24 00:00
 
 

강호학(江湖學)을 하려면 갖춰야 할 자질이 역마살이다. 현장을 가서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 보아야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조선 팔도 백학천봉(百壑千峰)이 모두 사정권에 있다. 골짜기마다 인물이 있고 봉우리마다 풍광과 기운이 다르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 ‘촬영 삼매’라고 하는 독보적 경지에 들어간 고송(古松) 장국현(80) 선생이 산다고 해서 동네로 들어갔다. 도로 옆과 음식점 담벼락에도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청도 반시’라고 하는 감이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이 근방에 안개가 많이 끼어서 감에 씨가 없는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한다.

감나무 길을 통과하니 고송 선생의 마당 앞에 소나무가 서 있다. 소나무 전문 사진 작가의 풍모를 상징하는 소나무. 세월의 풍상에 찌든 소나무이다. “집터가 좋네요. 소쿠리가 둘러싼 소쿠리 명당 같습니다.” “옛날 가야 시대 이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가 있었는데, 그 왕이 살던 터라고 전해집니다.” 깊은 심산유곡에 사는 수백 년 된 소나무를 찍기 위해서 산속에서 몇 달씩 카메라를 품고 집중하다 보니 ‘촬영 삼매’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좋은 소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어떤 때는 밤 12시부터 20㎏의 장비를 메고 영하 20도의 산 봉우리를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야만 신비로운 일출 장면과 소나무를 같이 찍을 수 있습니다. 조건에 맞는 장면은 20~30분 후면 사라지기 때문에 그 시간 안에 초집중해서 수동 카메라를 조작하고 셔터를 눌러야 합니다. 이걸 하다 보니 그 촬영 순간에 나를 잊고 대상에 집중하는 삼매력(三昧力)이 생긴 것이죠.”

 

고송은 1997년 백두산 꼭대기인 천문봉 근처에서 두 달간 머무른 적이 있다. 중국 기상 관측소가 있었는데 천지(天池)를 내려다보는 위치였다. 이 낡은 건물에서 숙식하며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다. 체중이 무려 12㎏이나 빠지는 고생을 하였다. 그 고생을 하며 카메라 렌즈에 집중하다 보니 성령(聖靈·spirit)이 임하는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그의 사진 작품에서는 영기(靈氣)가 느겨진다. 작품집 제목도 영어로 ‘Spirit’이다. 말하자면 사진 찍다가 ‘한 소식(어떤 차원의 깨달음)’ 하게 된 사례다. 나도 한 소식 하려고 30년 넘게 백학천봉을 돌아다녔지만 하지 못했는데, 이 양반은 어찌 사진 촬영 하다가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단 말인가! 성령 체험 후부터 잘 늙지 않는다. 신선의 풍모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