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92] 언어와 국력

bindol 2022. 10. 12. 05:44

[차현진의 돈과 세상] [92] 언어와 국력

입력 2022.10.12 00:00
 

번역은 두 언어권을 연결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원문 뜻이 종종 왜곡되곤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는 성경 구절에서 낙타는 원래 밧줄이었다는 설이 있다. 중동의 언어인 아람어를 그리스어로 옮길 때 예수 말씀이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번역은 제2의 창조임이 틀림없다. 메이지 유신 시절 일본의 니시 아마네(西周)가 그랬다. 그가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기간은 2년밖에 안 되지만, 엄청난 관찰과 고민을 통해서 서양 문명의 정수를 하나하나 신종 한자어로 옮겼다. 철학, 과학, 예술, 이성, 기술 같은 말은 그의 머릿속에서 서양의 개념을 재창조한 결과다.

중국에는 옌푸(嚴復)가 있었다. 그는 2년간의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원부(原富)라는 이름으로 번역하고, 그의 연구를 부학(富學)이라고 소개했다. 논리학은 명학(名學)이라고 번역했다. 요한복음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문장이 있는데, 그 말씀(logos)에서 서양의 논리(logic)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통찰이다.

 

옌푸는 다윈의 연구를 천연(天演)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중에 진화(進化)로 대체되었다. 명학은 논리학으로, 부학은 경제학으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옌푸의 생각은 일본의 번역어에 밀려 대부분 도태되었다. 역설적으로 그가 만든 ‘자연도태’라는 말만 자연도태되지 않았다.

영어의 소사이어티를 니시 아마네는 사회(社會)로, 옌푸는 군(群)으로 번역했다. 사(社)는 원래 토지신(土地神)을 뜻하므로 사회는 ‘제사 지내는 모임’처럼 들린다는 것이 옌푸의 생각이다. 하지만 군(群)은 일본에서 만든 ‘사회’에 밀렸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언어도 생각도 도태된다. 국력이 한글의 버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