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93] ‘여긴 어딘가’라는 질문

bindol 2022. 10. 30. 16:03

[차현진의 돈과 세상] [93] ‘여긴 어딘가’라는 질문

차현진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2022.10.19 01:00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1990년대 인기 그룹 듀스가 부른 댄스 곡 가사다. “난 누군가?”는 철학적 담론이고, “여긴 어딘가?”는 과학적 담론이다. 콜럼버스를 포함한 모든 탐험가들이 “여긴 어딘가?”라는 질문과 싸웠다. 망망대해를 오래 떠다니다 보면, 자기 위치를 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릴레오나 뉴턴 같은 저명 과학자들까지 달라붙어 바다에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문제를 고민했다.

1568년 스페인의 멘다냐는 남태평양에서 섬들을 발견하고 거기가 보물섬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성경 속 풍요의 왕을 생각하며 ‘솔로몬 군도’라는 이름까지 붙였지만, 두 번 다시 찾아가지 못했다. 처음에 위치를 잘못 기록하는 바람에 네 번의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 그런 일을 없애려고 펠리페 3세가 종신연금을 걸고 항해 중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을 공모했다. 영국은 현상금을 2만파운드로 올렸다.

그 현상금은 의외의 인물이 차지했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목수 출신의 존 해리슨이었다. 그는 배의 속도, 방향, 운항 시간을 누적하여 기록한 뒤 출발 항에서 상대적 위치를 자동으로 역산하는 항해용 시계를 만들었다. 추측항법이라는 그 방식은 너무 단순해서 뉴턴과 하위헌스 등 당대의 물리학자들이 할 말을 잃었다.

 

그 시계 덕분에 영국이 시공간 측정의 기준점이 되었다. 1884년 그리니치 천문대를 남북으로 지나는 선이 경도와 표준시간의 출발선 즉, 본초자오선으로 정해졌다. 프랑스만 동의하지 않았다.

영국이 위치 계산에 유독 민감한 이유가 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서 프랑스에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던 네 척의 군함이 고국 앞바다 암초 지역에 들어가서 좌초했다. 1600여 명의 수병이 익사했다. 1707년 10월 22일 경도 계산 실수로 빚어진 비극이었다. 이후 “여긴 어딘가?”라는 질문이 영국의 화두가 되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불감증이 한국의 화두가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