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10> 동래 객사 뒤 적취정(積翠亭)을 시로 읊은 안축

bindol 2022. 10. 12. 05:57

푸른 1천의 대나무 빽빽하게 둘레 에워싸

- 碧玉千竿密作圍·벽옥천간밀작위



푸른 1천의 대나무가 빽빽하게 둘레를 에워싸(碧玉千竿密作圍·벽옥천간밀작위)/ 적취헌 지대(地臺)에는 푸름이 하늘을 메웠네.(滿空蒼翠積軒墀·만공창취적헌지)/ 비오는 날에 누가 국수(國手)를 불러오겠는가?(雨天誰喚王逢手·우천수환왕봉수)/ 관아의 휴가에 여유롭게 바둑 한 판 두네.(官暇來饒一局碁·관가래요일국기)

위 시는 고려 후기 문인인 안축(安軸·1282~1348)의 시 ‘積翠亭’(적취정)으로, 그의 문집인 ‘근재집(謹齋集)’에 있다. 그는 민지(閔漬)가 지은 ‘편년강목’을 이제현 등과 수정 보완했고, 충렬·충선·충숙 세 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적취정은 동래객사 뒤에 있던 정각으로, 조선 초기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축이 위 시를 지을 때만 해도 적취정은 있었다. 안축은 휴가 때 마음 여유롭게 이 정각에서 바둑을 둔 모양이다. 고려 때 최자(崔滋·1188∼1260)가 1230년 편찬한 ‘보한집(補閑集)’에 “東萊客館後有積翠亭(동래객관후유적취정), 按廉使郭東珣留詩一首(안렴사곽동순류시일수)…”란 글이 나온다. 즉 “동래객관 뒤에 적취정이 있는데, 안렴사 곽동순이 시 한 수를 남겼다”는 말이다. 안렴사는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 정도에 해당한다. 고려 중기 문신인 곽동순이 남긴 그 시를 문공유가 적취정에 시판으로 만들어 놓았으나 없어졌다고 한다. 곽동순·김정·최유청을 적취정의 삼절(三絶)이라 했는데, 시절(詩絶)·기절(記絶)·서절(書絶)이었다.

최자는 역시 ‘보한집’에서 “내가 정미(丁未)년 봄에 역마를 타고 이 정자(적취정)를 지나면서 한 번 보았는데, 감탄하여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어 화답시 한 수를 썼다. 현령 지장원이 판에 새기려하기에 굳게 말렸다. 삼절에 누가 되고, 장차 이 정자에 빚을 질까 염려되어서였다”고 했다. 적취정이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건 상상이 된다.

필자와 가깝게 지낸 선배 언론인 한 분이 계셨다. 약주를 좋아하시던 그 선배님과 동래시장에서 막걸리를 가끔 마셨다. 인근 동래관아 및 적취정 이야기도 나눴다. 추워지니, 지금은 고인이 된 그 선배님과 술잔 나누던 기억이 나면서 그분이 말씀하신 적취정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