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물든 붉은 단풍 두세 잎이 떨어지네(紅葉落兩三·홍엽락양삼)
가을 산의 오솔길 굽이져 있고(秋山樵路轉·추산초로전)/ 가도 가도 맑은 바람만 스치네.(去去唯淸風·거거유청풍)/ 해거름에 산새들 텅 빈 숲에 내려오고(夕鳥空林下·석조공림하)/ 붉은 단풍 두세 잎이 떨어지네.(紅葉落兩三·홍엽락양삼)
조선 후기 문신 최석항(崔錫恒·1654~1724)의 시 ‘秋景’(추경·가을 풍경)으로, 그의 문집인 ‘손와유고(損窩遺稿)’에 들어 있다.
계절은 지금쯤이다. 시인이 가을 산 오솔길을 걸었다. 당시 산의 오솔길은 요즘의 시멘트 포장길이나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길과 다르다. 굽이굽이 흙길이다. 오르락내리락 걷는 재미도 있다. 햇살이 좋을 뿐더러 바람이 맑다. 그렇게 여유롭게 걷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해거름이 다 되었다. 낮에 나갔던 산새들이 숲으로 들어온다.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즈음이다. 발 아래로 예쁘게 물든 단풍 두세 잎이 떨어진다. 시인이라면 어찌 시 한 수 읊지 않겠는가? 있는 그대로 풍경과 시인의 느낌을 담백하게 읊은 시이다.
요즘 필자는 답사 명목으로 가을 산에 자주 가간다. 목압서사에서 공부했거나 현재 하는 분들, 이전에 다른 곳에서 인문학특강을 할 때 수강한 분들과 여러 곳을 함께 다닌다. 전남 강진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연결되는 산길이 위 시의 ‘樵路轉’이었다. 해남 대흥사에서 산행로를 따라 일지암으로 올라가는 산길도 그랬다. 남해 노도항에 내려 서포 김만중이 위리안치돼 유배 살던 초옥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을 답사길에서 만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가을 햇살과 건강함이 묻어났다. 달성 도동서원과 경주 양동마을, 옥산서원 주변을 걸으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도 만났다. 모두 우리나라의 가을을 느끼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산이든, 들판이든, 강이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답사 중 만난 한 미국인은 “한국의 가을 산이 좋아 거의 해마다 산을 탄다. 자연의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이 한국의 가을 산이다”고 말했다.
젊었을 적에 글이나 공부를 위해 답사를 다닐 때와 나이 조금 들어 가을 자연을 누비고 다니는 느낌이 달랐다.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것을 새로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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