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달라지는 축구판도

bindol 2022. 10. 12. 06:07

[이규태코너] 달라지는 축구판도

조선일보
입력 2004.08.23 18:07
 
 
 
 

수덕사의 선승(禪僧) 만공(滿空)은 어느 수준에 이르지 않는 수도승은 만나주질 않았다. 흐드러지게 눈내리는 어느 날 밤 만나주지 않은 스님 가운데 한 분인 김일엽(金一葉) 스님이 만공의 선경(禪境)에 마음이라도 적시고자 선방 앞에 눈을 맞으며 세 시간 남짓 서 있었다.

‘누가 눈 맞고 세 시간이나 서 있는고’ 하는 특유한 목소리를 듣고 도망쳐온 일이 있었다고 생전의 스님에게 들었다. 일엽 스님이 눈 맞고 서 있던 곳은 선방에서 20여m나 떨어진 곳인데도 만공은 인기척을 감지했을 뿐 아니라 눈 내리는 소리의 질(質)로 언제부터 서 있었는가도 가늠한 것이 된다. 스님은 깊은 산속 오묘한 선경에서 인기척에 민감했겠지만 문명의 이기 속에 살수록 인기척은 둔화해질 수밖에 없다.

막강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미국 병사들이 어릴 적부터 자동차를 타 버릇하여 사람의 접근이나 사이를 감지하는 직각(直覺)이 퇴화한 때문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밀림이나 어둠 속에서 적이 어느 방향 어느 거리까지 접근했는가를 통찰할 감각의 둔화가 잠복, 미행, 기습, 침투전으로 시종되는 밀림전에서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길거리에서 사람끼리 부딪치면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이 어제그제였는데 요즈음 젊은이들 몸을 비킬 줄도, 실례했다는 말에 인색한 것도 자동차 문화의 탓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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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능력 가운데 배후나 좌우 원근에서 달려오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고 알아차리는 찰지력(察知力)의 우열을 든다. 이 찰지력이 가장 많이 작용하는 것이 선수 간에 부딪칠 빈도가 높은 축구다. 따라서 자동차가 거리 감각을 대행함으로써 감퇴하는 문화권, 그 밖에서 자유롭게 자란 젊은이들이 피하고 비키고 날래게 뛰어 우세로 몰아간다는 것은 과학이다.

이번 올림픽 축구에서 강세였던 유럽축구가 8강전에 몰락한 것이며 아프리카와 남미세가 돌출한 문화적 이유로 이 자동차와 거리감각의 변수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말리와의 8강전 파라과이와의 4강전을 보면서 이 거리감각의 우열이 절감되어 찰지력이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 보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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