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게으름뱅이 회의
지금 이탈리아의 산중에서 열리고 있는 게으름뱅이 회의는 해프닝이 아니라 게으름의 인식에 역사적 매듭을 짓는 선언(宣言)이다. 그래선지 이 회의에서 제시한 참여자격이 엄하기 그지없다. 게으름의 상징인 낮잠을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은 곳에서 자고 싶은 만큼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잘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스승이 있건 없건 식당이건 제청이건 코 골고 낮잠 자는 공자의 10대제자 재여(宰?)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또 다른 자격조건으로 어떤 일에건 먼저 손을 쓰거나 나서지 않으며 실행은 다른 사람 몫임을 체질화한 사람이어야 한다. 어느 한 나그네가 떡 두 개를 싸들고 먼길을 떠났는데 손에 들고 가기가 귀찮아 머리에 얹고 끈으로 매고서 갔다. 허기져 걸음을 헛디디면서도 꺼내리는 것이 귀찮아 지나가는 사람이 오면 부탁하려고 가고 있는데 저편에서 갓 쓴 사람이 입을 크게 벌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 위의 떡을 내려주면 하나를 주겠다 하자 이 사람 하는 말이 “갓끈이 늘어졌는데 조이기 귀찮아 이렇게 입을 벌리고 가는 걸세” 했다. 게으름뱅이를 입을 아악 벌린 악보라 속칭한 것은 이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이 악보는 게으름뱅이 국제회의에 참가자격이 차고도 넘친다.
중국문헌에 나부어(懶婦魚) 어유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기름을 노름방이나 기방(妓房) 등 유흥현장에 켜면 요염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로 소문나 있다 했다. 누워서 사는 게으른 며느리를 물에 빠져 죽게 했는데 그 원혼의 화신으로 게으름에 빛을 주는 여신이 된 셈이니 게으름시장의 상석에 자유의 여신처럼 좌정해야 할 나부어다.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어느 시장 하나 게으름을 팔고 사는 시장 아닌 것이 없다. 폭주하는 뉴패밀리의 젊은 주부들은 가사에 약하다. 이 약점을 파고들어 씻은 봉지쌀, 1회용 물걸레며 기저귀, 냄비 겸 그릇, 토스트와 계란프라이 등 2가지를 만드는 제품들 그 다양한 인스턴트 식품이며 물만 부으면 피어나는 즉석꽃에 이르기까지 온통 게으름시장이다. 게으름은 이제 악이 아닌 가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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