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마취 콘돔

bindol 2022. 10. 12. 07:46

[이규태코너] 마취 콘돔

조선일보
입력 2004.08.11 18:37
 
 
 
 

접경해 사는 이웃 나라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아 매사에 헐뜯게 마련이다. 좁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적대 호칭은 전통도 유구하다.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입에 올리는 데 용기가 필요했던 콘돔을 프랑스에서는 ‘영국 모자(샤포 앙글레)’라 하는데 영국에서는 ‘프랑스 문자(프렌치 레터)’라 한다. 연전에 영국 가디언지(紙)에 “고문서를 조사해보니 프랑스의 왕제(王制)가 대혁명까지 유지된 데는 영국에서 건너간 콘돔의 공훈이 크다”는 글이 실려 영·불 간에 콘돔논쟁이 붙었다.

이에 프랑스 르 몽드의 칼럼니스트 사로트 여사가 반론을 제기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많은 사생아 때문에 나라를 어지럽게 했던 루이 14세의 경우가 없지 않다고 전제하고 루이 15세는 애인에게 아기를 낳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는데도 애인 하나가 애를 배자 충격을 받았다. 그때 영국에서 경이적인 피임기구를 발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300개를 긴급 발주했다. 영국의 메이커는 가톨릭 총본산인 프랑스에 피임도구가 간단히 송달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 끝에 세관을 무사 통과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소포 수취인을 ‘경건한 가톨릭 교도이신 국왕폐하’라고 프랑스 문자로 썼다. 여기까지는 양편에 이의가 없는데 가디언지는 이로써 루이 15세는 왕자들의 우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 데 비해 르 몽드는 이 소포는 세관에서 개봉되어 보낸 사람에게 되돌아갔다고 주장, 그 증거로 콘돔을 ‘프랑스 문자’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콘돔은 고대 로마 리바라리스의 소설 ‘변신’에 등장하는데 양의 방광이나 물고기의 부대(浮袋)로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다. 16세기에 들어 이탈리아에 실크 콘돔이 등장, 매독 예방에 기여했고 프랑스에서는 아기 양의 여린 맹장에서 벗겨낸 박피(薄皮)를 최상품으로 쳤다. 콘돔이란 말은 콘톤이라는 영국 의사가 찰스 2세를 위해 만들었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에이즈 예방의 유일 수단으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더니 발기 시간을 갑절 이상으로 늘려주는 마취 콘돔이 출시되어 다시 응달로 돌아가야 할 팔자가 돼버렸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