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100미터 김밥
억센 정착성 민족이라선지 남들과의 화합을 큰 덕목으로 쳤던 한국인이다. 그래선지 화(和)의 문화가 보다 발달한 나라를 찾아볼 수 없음도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너와 나라는 가장 기초화합의 의식으로 합근(合?)을 들 수 있다. 표주박 잘라 그 잔에 담은 한 잔 술을 둘이서 나누어 마심으로써 일심동체가 되어 일생을 해로하자는 결혼의식이다. 세조가 여진족을 토벌하고 온 신숙주와 더불어 궁벽(宮壁)에서 표주박 하나를 따 이를 갈라서 술을 담아 나누어 마심으로써 군신의 일심동체를 다진 것이나, 사라지지 않은 술잔 주고받는 수작(酬酌)도 바로 합근문화의 잔재다. 법도 있는 집안에서 한 식구일지라도 종이나 머슴 이부 자식은 한솥밥을 먹이지 않았고, 손님일지라도 친계(親系) 5대조 외계(外系) 3대조 처계(妻系) 2대조 안에 든 친척만 한솥밥을 먹였으니 한솥밥은 인화문화의 존재방식이었다.
마을이나 관아(官衙) 단체들의 인화수단으로 대포(大匏)문화를 들 수 있다. 한 말들이 큰 술잔에 가득 술을 담아 돌려마시는 향음례(鄕飮?)가 그것이다. 사헌부의 별칭이 아란부(鵝卵府)요, 교서관이 홍도관(紅桃館), 예문관이 벽송관(碧松館)이란 미명으로 불렸던 것은 그 관아의 일심동체를 다지는 의기(儀器)인 대포의 호칭을 딴 미명들이다. 물을 흘려 그 홈을 타고 술잔을 띄워 돌려마시는 경주 포석정은 망국의 현장이 아니라 신라 군신 간에 화를 다지는 문화현장이었다. 금산사 등 대찰에 가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 밥솥을 볼 수 있다. 불사의 의례를 적은 ‘백장청규(百丈?規)’에 부처와 스님, 그리고 중생이 더불어 한솥밥을 먹어야 한다는 한솥밥 정신이 그렇게 솥을 키웠다.
지금 괴산군에서는 4만여 군민이 먹을 수 있는 밥을 한솥에 짓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밥솥을 만들어 전통 인화문화를 군민화합에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10년 연속 노사 간 무분규를 기념하고 화합을 다지는 100미터짜리 김밥을 만들어 노사가 나누어 먹는 합심행사를 가졌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두 한국 정신민속의 부활이요, 세계적 과시로 각광받을 만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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