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열전

[이한우의 간신열전] [156] 중구난방

bindol 2022. 10. 13. 15:58

[이한우의 간신열전] [156] 중구난방

입력 2022.10.13 03:00
 

중구난방(衆口難防)은 여러 사람 입을 막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어찌 보면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말이라 할 수 있다. 저 왕조 시대에도 권력자들이 백성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그것은 애당초 안 될 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뜻이 지금은 확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아무나 마구 지껄여대서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다는 부정적 뉘앙스로 쓰인다. 한마디로 일정한 방향 없이 제 마음대로 떠들어댄다는 뜻이다.

요즘이 딱 그렇다. 야당 대표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는 일언반구 비판도 없이 한미일 합동군사 훈련에 대해 “위기를 핑계로 일본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자충수”라며 극단적 친일이라고 몰아세운다.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소음을 일으켜 주목이나 끌어보자는 하수(下手)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수준 이하 인식이자 발언이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를 비판하는 여당에 대해 “해방 후 친일파 행태”라고 근거도 없고 논리적으로도 설득력 없는 주장에는 실소마저 나온다.

 

이런 수준에서 대응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여당 비대위원장은 이 야당대표의 철 지난 친일몰이를 무시하거나 논거를 무너트리지 않고 느닷없이 조선이 무능하고 무지해서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이 국면에서 던질 역사 인식은 아니다. 그러자 유승민 전 의원은 무슨 맥락인지 모르겠지만 “망언”이라며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 일이 비대위원장 사퇴랑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이에 한 술 더 떠 나경원 전 의원은 “서울 하늘에 인공기가 펄럭거려도 좋다는 말인가”라며 기름을 부었다. 이 말은 당장 ‘인공기 펄럭이지 않게 하기 위해 차라리 욱일기가 펄럭이게 하는 게 낫다는 말인가?’라는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공자는 말을 바로 하는 것[正名]이 정치라고 했다. 말을 바로 할 자신감이나 능력이 없으면 입을 다물거나 정치를 그만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