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투표 자수

bindol 2022. 10. 13. 16:54

[이규태코너] 투표 자수

조선일보
입력 2004.07.08 18:41
 
 
 
 

영국작가 버나드 쇼의 아버지는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하면 웃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남의 불행을 좋아하는 얼빠진 사람으로 소외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장에서는 고난을 등지고 편안하게 먼저 간다 하여 웃을 수도 있고, 고인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형식적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하여 신선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다. 개별 의사나 행동을 두고 정착사회와 이동사회의 태도가 이렇게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아는 사람끼리 수백년 더불어 살아온 정착사회에서 소수의견은 다수의견에 수렴하는 것이 미덕이다. 하지만 유럽이나 중동처럼 낯선 사람끼리 살아온 뜨내기 이동사회에서 소수의견은 존중해 주는 것이 미덕이다. 19세기 말 에디슨 최초의 발명품이 의회의 전기투표기였다. 번거롭게 투표소까지 오가질 않고 의석에 앉아서 버튼만 누르면 되는 이 전기투표기 시설을 거부한 것은 그 편의성 때문에 소수의견의 개진 기회가 묵살당하고 다수의견의 횡포가 심해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소수의견의 참작·수용이 민주주의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진주만 공격으로 2차 세계대전을 도발한 지 이틀 후 미국 하원에서 대일 선전(宣戰)을 의결했을 때 예상외로 반대표 하나가 나왔었다. 의회뿐 아니라 전 국민 감정에 반한 이 극소수 의견을 두고 그 반대표에 대한 비난도, 또 누가 던졌는지 색출하려 하지도 않았고, 자수하라고 압력을 넣지도 않았다. 반대 투표를 한 여성의원 재닛 랜킨도 당당히 반대했다고 나섰으며 후에 선거민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긴 했지만 “민주주의란 만장일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정치제도”라면서 국가나 사회가 한 현안을 두고 산사태처럼 한쪽으로 무너져서는 안되듯, 밸런스 감각 없는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이라고 한 말은 의정사의 명언이 돼 있다.

지금 국회에서 동료의원의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여당의원들이 당론을 어겼다 하여 자수 압력을 받고 있다던데, 이는 내부적으로 은밀히 닦달하건 말건 할 일이지 드러내놓고 한다는 것은 정착사회 논리의 횡포요, 의회민주주의의 파행(跛行)이며, 국제적으로 의정의 성숙도가 이만하다는 치부 노출이기도 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