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읽기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8] 정체를 알 수 없는 움직임

bindol 2022. 10. 14. 08:53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38] 정체를 알 수 없는 움직임

입력 2022.10.14 03:00
 
오연진, Over All #18, 2022.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은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눈으로 수집하는 정보 중에서 형태나 색과 같이 평면적인 단서와는 달리, 움직임은 거리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망막에서 상의 크기가 커지지 않는 경우라면 대상은 나를 향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없다. 거리를 좁히지 않는 움직임은 나의 안위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다가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움직임은 관찰자를 위협하지 않으므로 순수한 유희성이 보장된다. 동물원에서 맹수를 구경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런데 움직임이 대상과 나의 거리를 좁히는 방향으로 파악되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대상의 이름이 무엇이고 나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은 없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최대한의 주의 집중이 필요하다. 유희를 넘어선 긴장감은 넘실거리는 거리감에서 나온다.

오연진(1993~ )의 ‘오버 올(Over All)’ 연작은 경쾌한 움직임을 담고 있다. 사진처럼 생겼지만, 손으로 그린 그림 같기도 하고 디지털 드로잉 같기도 하다. 분명히 인화지의 표면을 지녔는데 한참을 들여다봐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구름을 찍었다거나 사람을 그렸다거나, 구체적인 대상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없다. 움직임만이 궤적으로 남았다. 반복적으로 구불거리는 형태는 중첩되어 앞뒤로 배치된 듯 하지만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점잖게 조용한 추상에 머물지도 않는다. 강한 색의 대비를 더했기 때문이다. 형태가 주는 안정적인 유희성에 색의 효과가 더해져서 경쾌한 역동성이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그러니 제작 과정이 더 궁금해진다.

이쯤에서 비밀을 발설하자면, 이 작품은 A4 정도 크기의 반투명 종이 위에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암실에서 확대기에 필름 대신 드로잉을 넣고 확대해서 프린트한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컬러사진 인화술인 ‘크로모제닉 프로세스’를 이용해서 밝기와 컬러를 결정하였으니, 말 그대로 그림에 사진을 더한 방법을 쓴 것이다. 작가는 이 방법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 요동치고 누구도 대립하지 않는데 진동하는 힘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처럼 근사하게 살아남은 인류의 동물적 노하우를 발휘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