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스님의 태평양 횡단

bindol 2022. 10. 15. 11:07

[이규태코너] 스님의 태평양 횡단

조선일보
입력 2004.05.20 18:17
 
 
 
 

신라 청년 대세(大世)는 숭배하는 담수(淡水) 스님을 찾아가 그의 모험을 의논했다. ‘신라 산골에서 생을 마친다는 것은 못 속의 물고기나 조롱 속의 새와 다를 것이 없소. 낚싯배라도 타고 나아가 오월(吳越)의 땅에 이르러 온 천하를 날아다니며 호령하고 싶소’ 하고 떠나간다. 이 신라 젊은이들의 프런티어십을 뒷받침한 것이 신라 불교였다. 곧 불교에 있어 구도(求道)는 서역(西域)으로 통했고 신라스님들의 소망은 중국 오대산과 불교발생지인 오천축의 성지순례였기에 그것이 모험 정신으로 토착화했음 직하다.

사발같은 통배에 돛자리 펴 달고 신라를 떠나 동지나해 남지나해 벵골만을 가로질러 갠지스강 삼각주에 상륙한 혜초, 염천의 오천축을 맨발의 걸승차림으로 수십년을 걸어 부다가야의 성도성지(成道聖地)에 이르자 ‘본원(本願)을 이루어 환희(歡喜)가 비상하다’고 했다. 오천축에 신라 프런티어십을 구현한 모험스님은 혜초만이 아니다. 현격(玄?), 혜업(惠業), 현태(玄太)가 있고 당시 불교대학이랄 수 있는 나란다에 유학했던 아리나발나, 혜륜(惠輪), 현본(玄本), 현유(玄遊) 스님도 모험승이다. 이 가운데 본국으로 돌아간 스님은 혜초와 현태뿐으로 나란다의 본당 뒤켠에 유학승의 부도묘지가 있어 행여나 신라의 모험가들의 흔적이라도 있을까 헤맸던 일이 생각난다.

풍토학에서 반도인(半島人)은 진취정신이 왕성하다 했는데 신라시대에 반짝했다가 중국사대주의가 그 정신을 억누르고 고려시대의 불교가 극락-현세-지옥의 수직사고(垂直思考) 쪽으로 흘러 프런티어십을 조장하는 수평사고(水平思考)를 저해했으며 조선조 내내 불교탄압으로 산속 깊이 그 정신을 가둬놓는 바람에 이 불교 모험주의는 고사해왔다. 이 와중에 일엽주인 ‘바라밀다’호를 타고 미국 샌디에이고를 떠나 64일 동안 태평양을 횡단, 지난주 부산항에 도착한 모험 스님이 있다. 법주사 주지를 지낸 56세의 지명(之鳴) 스님으로 구법정신과 접목한 신라 프런티어십의 현대적 구현으로 불교인식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코너] 곰 발바닥  (0) 2022.10.15
[이규태코너] 벨리스윙  (0) 2022.10.15
[이규태코너] 농땡이 문화론  (0) 2022.10.15
[이규태코너] 17년 매미  (0) 2022.10.15
[이규태코너] 푸른 장미  (0) 2022.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