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농땡이 문화론

bindol 2022. 10. 15. 11:06

[이규태코너] 농땡이 문화론

조선일보
입력 2004.05.21 18:32
 
 
 
 

육식동물인 사자는 먹이를 쫓을 때 그것이 나약한 토끼일지라도 한눈팔지 않고 전력 질주를 한다. 잡아서 고(高)칼로리를 섭취하고 나서는 느긋하게 누워 지낸다.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가 선명하다. 이에 비해 초식동물인 원숭이는 먹이가 저(低)칼로리라서 먹으면서 먹이 찾아 옮겨가야 하기에 부산하게 나부대며 동시다발적으로 행동한다. 곧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가 혼동된다. 사육하지 않고 방생시킨 말은 8시간 풀을 뜯어야 겨우 2시간 일할 기운을 얻기에 8시간 동안에 생리도 하고 암내도 맡고 새끼 보살피는 여타의 일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선지 초식성의 한국인의 노동 밀도가 육식성 미국사람들의 75%라는 조사가 있었다. 직장에서 4분의 1은 공적 업무와는 아랑곳없는 농땡이로 흘려보낸다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 직장인들 근무시간의 4분의 1을 한눈파는 농땡이로 소모한다는 조사결과가 보도되었는데, 10여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어 무상하다.

“미국사람들은 잔인할 정도로 비인간적이다”라는, 미국 백화점에서 일하는 한국 여점원의 투고를 읽은 기억이 난다. 손님 없을 때 기둥에 잠시 기대었다 하여 감봉처분당한 데 대한 역정이었다. 사생활이 회사의 시간을 침범하고 회사 시간이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이 얼마만큼 용서되는 원숭이성 한국 직장의 관행에서 지당한 역정이다. 하던 일이 덜 끝났으면 집에 가져가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근무시간 외에 회사일을 하는 대가를 미국에서처럼 모질게 청구하지도 않는다. 곧 사(私)시간과 공(公)시간이 완충된 농땡이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상된다. 미국 직장에선 작업 종료시간이나 교대시간의 시보가 울리면 진행 중인 작업을 칼로라도 자르듯 멈추고 쓰던 공구를 그 자리에 두고 현장을 떠나 버린다. 그럼 효율적인 다음 작업을 위해 어질러놓은 현장을 정리하는 가외 작업이 따르게 마련이며, 이 일을 프린지 워크라 하는데 직종에 따라 농땡이 손실 노동량과 맞먹기도 한다. 농땡이를 노동시간 낭비로만 악덕시하지 말고 노동의 인간화 수단으로 발전적 조율을 시도해봄 직한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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