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부처간 인력교류

bindol 2022. 10. 26. 16:01

[이규태코너] 부처간 인력교류

조선일보
입력 2004.01.09 17:57
 
 
 
 

행동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의 「벌거숭이 원숭이」는 인간 행동에 스며 있는 원숭이의 생태를 가려낸 명저다. 그에 따르면 원숭이 사회는 순위(順位)와 서열을 지키는 종적(縱的)사회로 한 마리 수놈이 한 무리를 지배하면 차순위 차차순위의 원숭이가 그에 따르는데, 차순위의 원숭이 털이 윤기가 더하고 성적 매력이 더하거나 목덜미에 이전에 없던 긴 털이 나면 보스 원숭이가 병들었거나 노약해져 지배권을 바꿀 시기가 임박했음을 그로써 안다 했다.

곧 원숭이뿐 아니라 짐승의 집단생활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데 종적 서열구조가 필수요 그 보스가 바뀔 즈음에 종적인 차순위자에게 생리적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은 서열파괴가 일어나거나 외부에서 횡적(橫的)으로 보스가 유입됐을 때의 혼란이나 갈등, 이산, 파멸을 막기 위한 종족보존의 지혜가 유전적으로 생리화한 것이다.

벌거숭이 원숭이인 인간도 매한가지요 다만 이동성 생활을 해온 서양사회에서는 인간 능력의 횡적 기능이 발달하고 한국 같은 정착성 생활을 수천년 해온 정착사회일수록 원숭이 사회 같은 종적기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사람 만나면 명함부터 교환하여 서로의 서열 위상을 확인하고 종씨면 항렬을, 동문이면 학번을, 동갑이면 주민등록번호를 비겨야 비로소 관계가 안정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데 현대화사회는 뿌리 깊은 종적 구조를 후진성이라 하여 깨트리고 선진성의 횡적 기능을 그 구조 속에 도입함으로써 활성화를 도모하지만 워낙 뿌리깊은 한국의 사회구조요 한국인의 의식구조인지라 번번이 삐걱 소리를 내왔다.

새해 들어 정부가 중앙부처의 국장급 고위직의 부처 간 횡적교류와 공개경쟁 선발제를 시도한 것도 오래 고인 물갈이 하듯이 부처의 침체나 텃세며 이기주의라는 부정적 요소를 기능 위주로 수렴·활성화하려 함일 것이다. 하지만 골이 깊고 뿌리 깊은 세로로 파인 틀에 가로로 된 촉꽂이를 하려면 그 틀을 깎고 다듬은 후에야 했을 텐데 그 선행작업이 없었다. 생리적 변화도 없는 낯선 딴 무리의 보스 원숭이가 와서 군림했다고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코너] '발자국 指數  (0) 2022.10.26
[이규태코너] 아침형 인간  (0) 2022.10.26
[이규태코너] 지문 파동  (0) 2022.10.26
[이규태코너] 칠지도(七支刀)  (0) 2022.10.26
[이규태코너] 원일한  (0) 202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