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아침형 인간

bindol 2022. 10. 26. 16:02

[이규태코너] 아침형 인간

조선일보
입력 2004.01.10 18:15
 
 
 
 

옛 선비사회에「사재(思齋)처럼 먹고 괴애(乖崖)처럼 자라」는 신조가 있었다. 중종 때 선비 사재 김정국(金正國)은 다섯 가지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말했었다. 한데 어느날 한 제자가 사재 밥상에 반찬이 세 가지만 올라 있는 것을 보고 왜 다섯 가지라고 거짓말하느냐고 물었다. 이에「자네 눈에는 두 가지 반찬이 보일 터문이 없지」하고 반드시 시장할 때 찾아먹으니 시장이 그 한 반찬이요, 반드시 따뜻하게 해서 먹으니 그것이 다른 한 반찬이라 했다.

괴애는 세조 때 학자 김수온(金守溫)이다. 옛글을 많이 외우기로 괴애 위에 난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기억력이 좋은 분이다. 책을 구하면 낱장을 찢어 소매 속에 넣고 다니며 마상(馬上) 측상(厠上)에서 외웠다. 신숙주에게 임금이 내린 「고문진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이를 빌려왔다.

돌려준다는 날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자 신숙주가 찾아가 방문을 열었더니 그 귀한 책 낱장을 찢어 천장과 벽에 도배질해 놓고 누워 이를 외우고 있었다. 쥐는 잠을 자지 않기에 그보다 빠르게 일어날 수는 없지만, 소보다야 늦게 일어날 수 없어 평생 축시(2~4시)에 일어난다는 괴애다. 산마(散麻)처럼 어지러웠던 정사를 가지런히 가렸다는 괴애의 지식과 지혜는 바로 남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 새벽에 부지런함의 소득이다.

 

요즈음 기업체들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아침형 인간을 권장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서구나 중동에 비해 조기 문화권에 속한 한국 사람은 아침형 인간으로 유전적 자질을 타고난 것 같다. 십수년 전 로스앤젤레스 한국영사관 앞에 미국인 야채상들이 연좌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현수막에는 「한국의 야채상 고 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침밥을 위해 신선한 야채를 가게머리에 쌓아두기 위해서는 새벽 어둠이 가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미국인 야채상인들이 힌국의 야채상인들과 이 조기경쟁을 감당 못해 손을 들고 고 홈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차 산업시대에 체질화된 이 조기 유전질이 2차산업화 과정에서 무뎌져 오늘에 이르렀다. 문제는 잠재된 유전질을 자극하는 일일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