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후세인과 '죄와 벌'

bindol 2022. 10. 27. 15:59

[이규태코너] 후세인과 '죄와 벌'

조선일보
입력 2003.12.18 15:59
 
 
 
 

독재자 후세인이 소설을 쓴 작가라면 곧이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파리에는 사담 후세인이 쓴 것으로 알려진 소설 ‘사비바와 왕’이 불역되어 출판되었는가 하면, 연합군의 공격 직전까지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에게 승리한다는 ‘악마는 물러가라’는 표제의 서사시를 쓰고 있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사비바와 왕’은 1000년 전 한 왕국의 고독한 왕과 그의 연인인 젊은 유부녀가 주인공으로 왕국과 왕을 해치려는 음모가 줄거리인데, 그 연인이 왕을 배신한 자로부터 강간을 당하는 그 날을 걸프전쟁이 일어났던 1월 17일로 잡고 있다.

여성이 피해를 입건 조국이 피해를 입건 강간은 최악이며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강간을 당하고만 있는 일이라 했다. 미국을 강간자로 몰고 이에 대적하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줄거리다.

후세인이 은신했던 농가의 방 옷장 위에 여남은 권의 책이 놓여 있었는데 은신 도중 후세인이 찾아 읽었을 책들일 것이다. 그 중 해몽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불안한 도피생활 중 꿈속에서도 불안함이 오죽했을 것이며 해몽을 믿음으로써 불안함에서 벗어나 안도감을 얻으려는 도피자의 심리를 읽을 수 있게 한다.

 

그 밖의 책은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죄와 징벌에 관한 고대 아랍의 저술이나 시집들이었다는 데 주목하게 된다. 도피중 심경이 소설을 썼을 만한 후세인의 문학적 소양에 어떻게든지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케 한다.

아마도 이 독재자에게 죄의식이 엄습했던 것 같으며 그에 대한 벌이 어떤 형태로 내려지고, 받아야 하는가가 궁금했을 것이다.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대량학살하고 반대종파와 사위들까지 무차별 학살해온 그였지만 마치 ‘죄와 벌’의 주인공이 사회의 암적 존재인 고리대금업 할머니를 죽인 것을 정당화하듯이 자신을 합리화하고 싶었을 것이요, 그 주인공이 죄의 대가인 벌을 어떻게 받았는가 확인하고 싶어 이 책을 찾아 읽었을 것이다.

‘죄와 벌’의 주인공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에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듯이 후세인도 지금 그런 심정일 것이다. 후세인더러 강간에 대해 지금 심정은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