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열하 행궁(熱河 行宮)
이제까지 닫혀 있던 청나라 열하 행궁이 관광지로 개방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250㎞ 떨어져 있는 열하는 청나라 최성기 90년간 여름 서너 달 동안 임금을 비롯한 문무백관이 옮겨 집무했던 제2의 수도로, 10㎞의 성벽에 둘러싸인 행궁 지역과 행궁 둘레의 라마교 사찰지대로 대별된다.
열하나 열하성이라는 지명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허베이(河北)성 청더(承德)로 알려져 있을 뿐이요, 온천이 솟아 얻은 열하라는 이름은 행궁의 온천지(池)에 서 있는 열하천이라는 돌비석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법국오동(法國梧桐)으로 불리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끝나는 곳에 새장 들고 새를 파는 노인들이 웅성거리는 궐문 앞에 이르면, 그 궐문에는 강희제(康熙帝) 친필의 「피서산장(避署山莊)」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옛날 조선 사신들이 이 문을 통과하려면 금싸라기 몇 알이나 조선 종이 몇 장으로 뇌물을 써야 통과할 수 있었다.
다섯 채의 편전을 거느린 남궁(楠宮)으로 불리는 정궁이 나오는데 녹나무로 지어 지금도 녹나무 향이 물씬하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사신 박명원(朴明源)은 청나라 임금에게 세 번 엎드려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복속(服 )의 굴욕적 예를 요구받았다. 매카트니 영국 사절이 통상을 요구하고자 이곳을 찾았을 때, 이 복속예의 선행을 요구하자 거부해서 유명한 바로 그 현장이다.
연암 박지원이 이곳에 갔을 때 행궁 밖 금벽돌 금기와로 지은 라마교 절에는 멀리 티베트의 활불(活佛) 판첸 라마가 와 있었으며, 천자의 스승인 이 활불을 배알할 때 천자에게 하듯 삼배구고두를 강요받았다. 이에 조선 사신은 이를 거부, 인도하는 상서와 삿대질을 하고 모자를 벗어던지며 나뒹구는 저항을 했다.
애오라지 주체성을 지키려는 조상의 심지가 표출된 것이다. 그는 이 라마교의 사각(寺閣)을 칠한 금이 조선에서 은밀히 유출된 금이요, 누각의 창틀에 바른 문종이가 조선 종이임을 알고 통탄하기도 했다. 개방되는 열하는 이처럼 우리 조상의 한이 서린 현장이기도 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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